[5분]만에 끝내는 기본 세계사 6편 - 로마제국
카이사르의 양자였던 옥타비아누스가 패권을 잡았고 기원전 27년에 원로원은 그를 국가 제1시민으로 임명했습니다.
그에게는 군의 최고 사령관을 뜻하는 임페라토르라는 칭호가 주어졌고 여기에 신성한자 아우구스투스라는 명예 칭호도 덧붙여졌습니다.
또 그는 카이사르의 후계자였기 때문에 황제를 뜻하는 단어 카이저는 카이사르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이 이름을 부여받았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최후를 교훈으로 삼아 권력을 과시하는 대신 원로원과 민회의 구성원들이 로마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며 그 때문에 공화국이 다시 제대로 돌아간다는 확신을 갖고 일을 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러나 로마군과 국가 재정을 장악하고 있는 아우구스투스의 뜻에 반하여 결정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로마 공화국은 모든 권력이 황제에게 집중된 군주제 국가가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 전역에서 로마의 법과 화폐가 통용되었고 로마의 신들이 숭배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 신의 숭배 문제에 관해서는 통제가 그리 심하지 않았습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주요 언어로서 어디서나 사용되었고 이 때문에 교역이 더욱 쉽게 이루어졌습니다.
로마는 가능한 한 신속한 군대 이동을 목적으로 이미 일찍부터 튼튼한 도로를 건설했는데 이러한 도로망은 교역의 발달에 좋은 조건을 제공했습니다.
또 선박과 항구 시설도 이제 평화적인 목적으로 개조되고 확장되어 역시 교역에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수도 있지만 로마의 점령은 점령 지역에 엄청난 혜택과 전례 없는 발전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도시들이 건설되고 확장되었고 도시 중심에는 포럼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정치 집회나 재판이 열렸습니다.
농민과 노동자 계층은 겨우 연명하기 위해서 고되게 일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도시의 집값은 때때로 너무 비싸서, 병영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임대 단지에 단 한칸의 방을 겨우 빌려 사는 가정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대체로 만족하며 살았고 적어도 제정이 시작된 뒤 처음 250년 동안에는 그전 세기에서 볼 수 있었던 큰 소요나 폭동, 내전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우구스투스 이후 로마 황제들은 아주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정복 전쟁을 벌이지 않았기 때문에 200년간 평화로운 시대가 계속되었고 팍스 로마나라는 말은 이때 생겨난 것입니다.
로마 제국은 전통적인 로마의 신들 때문에 새로 등장한 유일신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리스도 교도들을 박해했습니다.
서기 284년에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 제국을 4구역으로 분할하고 각 구역마다 한 명의 통치자를 두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제국을 더 효과적으로 다스리고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각자 군대를 소유하게 된 4인의 통치자들은 곧이어 서로 싸우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제국 전체는 더욱 약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이르러서야 4구역으로 분열되어 있던 로마가 다시 통합되었고 313년에 로마 제국의 안정을 위해 종교의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된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교도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이런 조치는 그리스도교 세력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교는 그의 보호아래 로마의 주요 종교가 되었고 이어서 그는 또 하나의 중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324년 비잔티움을 콘스탄티노플로 개명하고 이곳에 로마 제국의 새 수도를 건설한 것입니다.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는 황제에게 복종할 것을 다짐했으나 로마 주교는 이에 동의하지 않고 신앙 문제에 관한 최종 결정권은 교회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사도 베드로의 권위에 의지해 이 주장을 정당화했고 베드로는 에수 그리스도의 대행자로서 로마에 교회를 세웠고 로마 교회의 후계자들에게 그리스도교 세계의 통솔권을 넘겨 주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콘스탄티노플의 황제는 로마 주교를 크게 간섭할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로마 주교는 점차 서방 교회의 지도자로서 널리 인정을 받게 되었고 훗날 교황이라는 칭호를 얻기에 이릅니다.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는 황제에게 복종할 것을 다짐했으나 로마 주교는 이에 동의하지 않고 신앙 문제에 관한 최종 결정권은 교회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사도 베드로의 권위에 의지해 이 주장을 정당화했고 베드로는 에수 그리스도의 대행자로서 로마에 교회를 세웠고 로마 교회의 후계자들에게 그리스도교 세계의 통솔권을 넘겨 주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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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로마 주교는 점차 서방 교회의 지도자로서 널리 인정을 받게 되었고 훗날 교황이라는 칭호를 얻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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