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만에 끝내는 세계사 32편 - 미국 vs 소련 핵무기 공포의 균형
1949년에 북대서양 조약 기구 나토가 창설되어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미크, 룩셈부르크, 미국, 벨기에, 아이슬란드,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포르투갈, 프랑스가 이 기구에 가입했습니다.
소련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상호 경제 원조 위원회를 만들고 자국의 세력권 안에 있는 나라들과 우호 협력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루마니아, 불가리아, 체코슬라보키아, 폴란드, 헝가리가 먼저 소련과 조약을 체결했고 나중에 동독도 이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동과 서를 가로막은 철의 장막에 의해 독일 역시 분열되어 1949년에는 두 개의 독일이 건국되기에 이릅니다.
독일 연방 공화국의 초대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는 일관된 친서방 정책을 추진했고 독일 민주 공화국은 동구권 국가들 가운데 가장 열성적인 소련의 충복이 되었습니다.
냉전은 1950년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이 공산주의에 의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친서방적 국가 남한을 공격하면서 뜨겁게 달구어졌습니다.
서방 세계는 이를 자유세계가 공산주의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증거로 받아들였습니다.
공산주의의 다음 공격 목표는 서독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되었습니다.
나토는 소련이 서방을 감히 넘보지 못하도록 전력을 대폭 증강했고 서독 역시 일정한 군사적 기여를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독일이 또 다시 군대를 가지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 않았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남긴 흔적이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재무장을 둘러싼 첨예한 정치적 논쟁이 독일 안에서 벌어졌습니다.
아데나워는 신생 국가의 방향과 목표가 달려있는 중요한 고비마다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 왔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1955년 5월 5일에 서독의 나토 가입을 성사시켰고 1956년에는 새로운 연방군의 사열을 받았습니다.
1949년에 소련이 이미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이 무렵까지만 해도 미국은 소련에 대해 확실한 우위에 있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소련에는 미국을 위협할 만한 장거리 미사일이 없었는데 1957년에 소련이 지구 주위를 도는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데 성공하자 미국은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소련이 미국 영토에 대한 공격 능력을 갖추고 있음이 명백해졌기 때문입니다.
스푸트니크 쇼크는 양국의 군비 경쟁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경쟁에서는 그 어느 쪽도 결정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공포의 균형이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함께 공멸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두 강대국은 군사적 행동을 자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공포의 균형이 그 위력을 처음으로 드러낸 것은 1961년 8월에 이루어진 베를린 장벽의 설치를 통해서였습니다.
동독의 권위주의적 정권은 자국민이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정치적으로 더 자유로운 서쪽 지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에 장벽을 세웠습니다.
서방 강국들이 이에 대해 항의 표시를 하고 미국이 몇 대의 탱크를 움직이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서방의 공식적 관점에 따르면 장벽 설치는 소비에트 세력권 내부에서 벌어진 사건일 뿐이었습니다.
이보다 훨씬 더 심한 긴장 상황이 벌어진 것은 소련이 바로 미국의 대문 앞에서 사회주의 국가 쿠바를 지원하고 이곳에 비밀리에 로켓을 설치했을 때였습니다.
미국의 정찰기에 의해 1962년 10월 15일에 로켓 발사대가 발견되자, 케네디 대통령은 즉시 강경 대응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는 쿠바 주위의 해상을 봉쇄하고 동원령을 선포한 다음 소련 공산당수이자 국가 원수인 니키타 후르시초프에게 로켓을 철수시키라는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13일 동안 세계는 언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지 모르는 극도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후르시초프가 로켓을 철수시킴으로써 긴장은 해소되었습니다.
쿠바 위기는 최근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되는데 이를 계기로 두 초강대국은 힘의 정치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나라도 자국을 포함해 세계 전체가 전멸해도 좋다고 판단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완전히 눌러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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