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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만에 끝내는 세계사

[5분]만에 끝내는 세계사 34편 - 중동전쟁

by KS지식 - 문화 YouTube 2022.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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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만에 끝내는 세계사 34편 - 중동전쟁

예루살렘의 작은 언덕 이름인 시온은 과거 유대인들이 로마인의 박해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약속의 땅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이미 유럽의 유대인들이 처음으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서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40만 명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정주하던 아랍계 주민들에게 이들은 심각한 위협이었고 결국 쌍방간에 충돌이 발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유엔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4711월에 팔레스타인을 유대 국가와 아랍 국가로 나누고 예루살렘을 국제도시로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 전체가 자기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안을 거부했습니다.

유대인은 유엔의 결정을 수용했으나 이 결정이 공식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1948514일에 이스라엘의 건국을 선포해버렸습니다.

인접한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전쟁을 선포했지만 이들은 공동의 전략 없이 전장에서 개별적으로 싸웠기 때문에 압도적인 전력의 우위에도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유엔이 제안한 유대 국가 영토 외에 그것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을 더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열 달간의 전쟁을 통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팔레스타인에 살던 아랍인들, 즉 팔레스타인인들이었습니다.

75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에서 쫓겨나거나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때부터 그들은 주변 아랍 국가의 난민 수용소에서 생활하면서 유대 국가를 제거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적대적인 아랍국가들과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둘러싸여 지속적인 존립의 가능성이 불확실한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인데 역으로 소련은 아랍국가들을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1956, 1967, 1973년의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기존의 국경선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새로운 영토를 점령하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1964년에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이하PLO)가 결성되었고 아라파트는 1969년에 이 기구의 의장이 되었습니다.

PLO는 암살, 폭탄 테러, 비행기 납치 등으로 세계에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서방을 팔레스타인인들이 생각하는 문제 해결방향으로 끌고 가려 했습니다.

1970년대에 동서 갈등이 완화되고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미소 양국은 중동의 동맹국들에 압력을 가해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 냈습니다.

1977,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가 평화 회담을 위해 이스라엘로 간 것은 당시로서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그 결과 평화 협정이 맺어졌고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1967년에 정복한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했습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별다른 소득이 없었고 그들의 싸움은 계속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점령 지역에 유대인 정착촌을 추가로 건설함에 따라 긴장은 더욱 첨예해졌습니다.

1987년에 PLO는 인티파타를 선포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공개적인 투쟁을 시작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아이들, 청소년, 여자들까지 이스라엘 병사와 민간인들을 공격했습니다.

인티파다 운동은 급속히 환산되었고, 긴장 완화 정책에도 팔레스타인인의 상황이 전혀 변화하지 않았음을 전 세계에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관련 당사자들에게 협상 압력을 강화했는데 특히 몇몇 아랍 산유국들이 서방 산업 국가들에게 원유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도 중동 분쟁의 조기 해결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몇 차례 회담 끝에 PLO는 이스라엘이 존재할 권리를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팔레스타인 국가는 이스라엘의 자리에 대신 세워질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나란히 세워져야 했습니다.

그 대가로 이스라엘은 PLO를 팔레스타인인들의 대표 기구로 인정하고 점령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치권을 행사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이란은 1979년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친서방적인 팔레비 정권을 무너뜨린 이후 엄격한 이슬람 국가가 되었는데 이웃나라인 이라크의 독재자 후세인은 호메이니의 사상이 자국에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란과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또 이라크는 1990년에 쿠웨이트를 기습 공격해 점령했으나, 1991년 미국의 개입으로 쿠웨이트에서 퇴각했습니다.(걸프전)

이것은 아랍 국가가 아랍 국가를 공격하고 서방 국가가 아랍 국가를 지원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아랍인들에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아랍 세계에 대한 서방의 입장을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방이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편들 때 이를 아랍에 대한 적대 행위로 간주합니다.

적잖은 이들이 그러한 태도 뒤에 낡은 식민지 시대의 편견이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시각이 극단화되면 현재 아랍, 이슬람 세계와 서방 세계가 전쟁 중이라는 관념으로까지 발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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