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만에 끝내는 세계사 30편 - 파시즘과 세계공황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 의회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섰으나 역사가 길지 않은 민주주의는 전후의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이탈리아, 스페인, 헝가리, 폴란드에서는 민주주의에 적대적인 우익집단들이 이미 1920년대 초반에 권력을 잡고 독재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는 파시즘이라고 불리는 지배 체제를 만들어 내고 이것이야말로 사회주의와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무솔리니는 사람들의 불만과 신생 민주주의의 허점, 민주주의자들의 미숙함을 교묘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그는 검은 셔츠단이라는 제복 입은 폭력단을 결성하고 사회주의자들의 책동에 맞서 공공질서를 수호하는 사람으로 행세했습니다.
기업가들뿐만 아니라 중산층에 속하는 시민들까지 <일 두체> 야말로 자신의 신변과 재산을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에게서 지켜주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무솔리니는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4만 명의 검은 셔츠단원들을 이끌고 로마 진군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겁먹은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무솔리니의 압력에 밀려 그를 총리로 임명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의 민주주의는 전후 몇 년 동안 좀 더 강한 생명력을 발휘했으나 이 시대에는 문주주의 정부가 좌우 진영으로부터 공격과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과거 지향적 우익 정치 세력들은 민주주의 이전의 시기로 돌아가려고 했고, 좌익은 소련을 모범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 체제를 수립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세력들이 한 국가, 더 나아가 세계 전체에 얼마나 큰 위험이 되는가는 무엇보다도 기존의 정치 체제가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의 생활수준을 보장해 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전반적인 생활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급진적 정치사상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우익과 좌익의 개념은 원래 프랑스 의회의 의석 배치에서 나온 것입니다.
프랑스 의회에서는 의장의 자리에서 볼 때 보수적인 의원들은 우측에, 자유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의원들은 좌측에 앉았습니다.
우익과 좌익이란 표현은 상대적인 개념이고 오늘날에는 정치적인 견해가 아주 극단적인 경우 보통 극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1920년대 민주주의 체제가 도입되어 안정적으로 발전한 나라들의 경우 경제는 상승세를 탔고 생활수준도 빠르지는 앉지만 꾸준히 높아졌습니다.
위기는 넘긴 듯했고 대도시만 본다면 황금의 20년대는 전에 없이 활력에 넘친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유럽인들의 새로운 모범으로 떠올랐는데 재즈, 찰스턴, 전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새로운 음악, 춤, 의사소통 수단, 생산 기술이 미국에서 왔고 사람들은 이 모든 것에서 강한 인상을 받고 열광했습니다.
회사들이 부도가 났고 실업률이 증가했으며 이와 함께 바이마르 공화국의 의회 민주주의 체제를 거부하는 급진주의 정당의 추종자들 또한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사민당과 부르주아 정당들로 구성된 연정은 이런 상황에 필요한 경제 정책적 조치를 강구하기에 충분한 과반수 의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오늘날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경솔하게 과반수 의석을 어처구니없이 내팽개치고 말았습니다.
실업 보험의 재정 문제를 둘러싼 이견 때문에 의회주의에 따른 바이마르 공화국의 마지막 합법적 정부가 스스로 물러난 것입니다.
제국 의회는 더 이상 새 정부를 구성할 수 없었고 헌법에 따르면 이런 위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대통령이었습니다.
1925년 이래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은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을 지휘했던 파울 폰 힌덴부르크였는데 이 노장군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임무를 감당하기에 전혀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들과 옛 돌료들의 말을 듣고 여러 가지 치명적인 결정들을 내렸습니다.
이제 내각은 대통령의 임명에 따라 구성되었는데 내각을 여러 번 교체했고 그 교체 시기도 점점 빨라졌습니다.
의회가 법률을 제정하는 대신 대통령 내각이 대통령에게 제출한 긴급 명령을 대통령이 공포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인 삼권 분립이 폐기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장군이었던 힌덴부르크는 히틀러를 매우 미심쩍은 눈초리로 바라보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오스트리아 출신의 이 졸병을 총리로 임명하리라고 생각하시지는 않겠지요. 라고요.
1933년 1월 27일까지만 해도 힌덴부르크는 자신의 참모들에게 이렇게 말했지만 참모들은 의회 제1당의 당수를 정부에서 배제시킬 수는 없다고 힌덴부르크를 설득했습니다.
물론 이들 보수적인 정치가들은 히틀러를 지지한 기업계의 대표들과 마찬가지로 히틀러를 길들여서 자기들 목적에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세계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오판 가운데 하나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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