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세계사] 6편. 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한 진짜 이유? (10분 ver)
1940년 5월 26일 덩케르크에 집합안 연합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탈출작전이 시작됩니다.
그 많은 병사들을 한꺼번에 해안에서 탈출시키기에 배가 턱없이 부족했는데요, 그때 바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수많은 민간 선박, 어선, 통통배, 심지어 귀족들의 호화요트, 유람선 등 거의 700척에 가까운 선박들이 덩케르크 해안의 군인들에게 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자발적으로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영국 본토에서 갖은 위험을 뚫고 출발한 배들이었습니다.
파리를 점령한 나치 병사들은 관광객처럼 카메라를 들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히틀러도 에펠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4주만에 서부 유럽은 거의 다 히틀러의 손아귀에 들어왔고 다른 욕심이 생기는데 바로 동쪽의 소련까지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이때 소련에서 희소식이 들어오는데 내부 권력을 잡는 과정 중에 군부에서 무려 3만 명이 넘는 군 간부를 대대적으로 숙청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군 지휘관이 전부 숙청당했다는 것은 전쟁 수행능력이 없어졌다는 말과 같은데요, 병사들을 지휘할 브레인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틀러는 독소 불가침 조약서를 완전히 찢고 소련 침공을 결정하게 됩니다.
1941년 6울 22일 히틀러는 전격적으로 소련에 침공하는데요 2차 대전 안의 또 다른 대전 독소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진군을 중단시킨 히틀러는 모스크바 밑에 있는 우크라이나를 먼저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후방 우크라이나의 소련군이 정리되지 않은채로 모스크바를 치면 뒤에서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신중론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이 우크라이나 침공은 큰 실수가 됩니다.
6월 22일에 국경을 넘은 독일군은 모스크바 앞까지 갔다가 다시 방향을 돌려 남쪽의 우크라이나로 내려가 공격합니다.
8월 25일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고 하루만에 함락하고 다시 모스크바로 출발하는데 도착한 때는 10월이었습니다.
이때 독일군을 기다리고 있던 건 어마어마하게 추운 모스크바의 날씨였습니다. 정말 추울 때는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날씨입니다.
그리고 독일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온 사이 모스크바의 소련군도 철통 방어를 마친상태여서 결국 독일군은 모스크바 점령을 실패합니다.
1942년 7월 17일부터 1943년 2월2일까지 치러진 이 전투의 공식적 독일군 수는 40만 명, 소련군은 100만 명 이상이었습니다.
이 한 번의 전투로 대부분 군인이 전사했고 민간인 희생자까지 합쳐 총 200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독일군은 7초에 한 명씩 죽고 소련군은 6살짜리 아이에게도 총을 쥐여주고 전쟁터에 밀어 넣었다고 합니다.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가 스탈린그라드에서의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투를 묘사하는데 이 전투의 참혹함을 가늠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전투가 개시되자 독일군의 기갑부대와 독일 공군 전투기 수천대가 융단폭격을 하며 도시는 초토화되었습니다.
소련군의 대반격이 시작되고 당시 스탈린그라드 총공세 독일군 책임관은 파울루스 장군이었는데 1943년이 되자 스탈린그라드 점령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히틀러 총통에게 후퇴를 허락해달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히틀러는 스탈린과의 자존심 싸움에서 절대 물러날 수 없었고 대게르만족이 슬라브족에게 질 수 없다고 외칩니다.
파울루스 장군을 갑자기 육군 원수로 승진시키는데 명예롭게 싸우다 40만 명의 독일군 병사와 함께 장렬히 전사하라는 의미였습니다.
개죽음당할 수 없었던 파울루스 장군은 히틀러의 명령을 거부하고 1943년 2월 2일 소련군에 항복합니다.
40만명이었던 독일 군대는 항복 당시 겨우 9만 명만 남아 있었고, 죽지 않고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간 병사는 겨우 5,00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최악의 사상자를 낸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결국 소련이 승리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독일군에게 노르망디가 아닌 좀 더 북쪽인 도버해협으로 상륙한다는 거짓 정보를 흘립니다.
그리고 연합군은 대서양 해안 지역의 독일군 레이더 기지를 다 부숴버리고 노르망디 쪽으로 다가오는 연합군 함대를 포착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1944년 6월은 프랑스 해안 지역에 엄청난 악천후가 몰아쳤던 때라서 독일군은 오판하게 됩니다.
게다가 당시 대서양 방어를 총책임지고 있던 사막의 여우 독일군 로멜 장군도 고향 베를린으로 휴가를 갔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은 독일군을 완전히 속이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개시합니다.
150만 연합군 대군이 프랑스 땅으로 밀려들어오지만 히틀러는 여전히 기만작전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독일군은 대응할 타이밍을 놓치고 연전연패하며 연합군은 막힘없이 프랑스 내륙 지역으로 밀고 들어오게 됩니다.
1944년 7월 20일 독일군의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과 그의 동료들이 회의장에 시한폭탄을 설치합니다.
하지만 히틀러는 폭발에도 고막만 찢어지고 살아남습니다.
결국 히틀러 암살은 실패로 돌아가고 이 사건의 주모자 200명이 총살을 당하고 히틀러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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