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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투리시간에 공부하는 한국사] - 33. 3.1운동과 문화통치(1920년대)

by KS지식 - 문화 YouTube 2022.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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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투리시간에 공부하는 한국사] - 33. 3.1운동과 문화통치(1920년대)

헌병 경찰을 동원한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는 1919년 커다란 저항에 맞닥뜨리는데요, 바로 3•1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3•1운동으로 온나라가 대한 독립 만세의 함성과 태극기로 뒤덮이는 것을 목격한 일제는 무단 통치의 한계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3•1운동을 계기로 무단 통치의 실상이 전 세계에 알려지자 일제는 국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3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는 조선의 식민통치방식을 바꾸는데요, 일제의 폭력성을 은폐하고 한국인의 반발을 무마하고자 [문화통치]로 방식을 전환합니다.
문관이 아닌 문관도 총독이 될 수 있도록 정하고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고, 조선 태형령과 관리 교원의 제복 착용도 폐지합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도 일부 허용하면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발간을 허가합니다.
한국인에 대한 교육 기회를 확대를 표방하여 제2차 조선 교육령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이는 가혹한 식민 통치의 본질을 감추기 위한 기만책에 불과했는데요, 실제로 식민 통치가 끝날때까지 문관 출신 총독은 단 한명도 임명되지 않습니다.
헌병경찰제를 일반경찰제로 바꾸며 오히려 경찰 제도를 확대하여 경찰 수나 경찰 관련 예상이 증가합니다.
이렇게 일제가 문화 통치를 실시하면서 한국인에게 제한된 자유를 허용하는데 이는 일제 협력자 친일세력을 양성해 민족 분열 정책으로 작용합니다.
1910년대가 일본인 대 한국인의 대결 구도였다면 1920년대부터는 한국인 대 한국인의 대결 구도를 만든 것입니다.
민족 개조론, 자치론, 참정권론 등을 주장하며 민족 운동의 분열을 초래하고 일본은 교묘하게 우리민족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강화합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군수 물자를 생산하면서 일본은 공업화를 이루는데요, 곤수 물자의 수요가 늘면서 공장의 노동력이 부족해집니다.
이에 농촌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공장이 있는 도시로 이동하고 일본 내 쌀 부족 현상이 일어납니다.
일본에서는 쌀값이 치솟아서 폭동까지 일어날 정도가 되자 일제는 이 문제를 식민지인 한국에서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산미증식계획을 1920~1934년까지 실시합니다.


1920년대가 되면 일제의 산업 정책도 변하는데요, 회사령을 폐지하고 회사 설립을 신고제로 전환합니다.
1920년대에 제1차 세계대전으로 수혜를 입은 일본 자본주의가 발전해 축적된 자본을 식민지 조선에 침투하기 쉽도록 신고제로 바꿉니다.
값싼 일본산 제품이 밀려와 영세한 우리 민족 기업은 큰 타격을 입고 일본 제품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며 노동자는 임금 차별까지 당합니다.
한국은 값싼 노동력의 공급지이자 일본 공산품의 소비 시장으로 전락하고 한국인의 경제 활동은 크게 위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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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cocw0R6m5x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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