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투리시간에 공부하는 한국사] - 25. 동학농민운동
서학이라 불린 천주교에 대항하여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는데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사상과 곧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후천개벽을 내세웁니다.
이런 동학은 탐관오리와 외세의 수탈로 고통받던 백성들에게 큰 환영을 받으며 널리 퍼집니다.
지배층은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곧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동학을 탐탁지 않게 여깁니다.
흥선 대원군은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를 혹세무민의 혐의로 사형시키고 동학을 불법으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동학은 20년 넘게 꾸준히 교세를 확장하고 정부의 탄압은 날이 갈수록 심해집니다.
동학교도들은 최제우의 명예 회복을 위해 교조 신원운동을 펼칩니다.
동학 농민 운동은 1차와 2차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1차 봉기는 1894년 1월 전라도에서 일어난 고부 농민 봉기에서 출발합니다.
당시 고부 군수였던 조병갑의 보를 둘러싼 횡포 때문입니다.
고부군에는 이미 농사를 지으며 물이 필요할 때 물을 퍼다 쓰는 저수지인 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부 군수 조병갑은 농민들의 노동력을 동원하여 만석보라는 보를 하나 더 만들고 농민들에게 강제로 물세를 거둡니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의 공적비를 세우는 데 농민들을 동원하면서 이것이 봉기의 도화선이 됩니다.
사발통문은 주모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사발로 그린 원을 중심으로 명단을 둘러가며 적은 통지문입니다.
사발통문은 비밀리에 동학 교도들에게 전달되고 농민들은 고부 관아를 습격하여 조병갑은 이미 도주하였지만 억울하게 옥살이하던 사람들을 풀어줍니다.
그리고 창고의 곡식을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주는데 이 소식은 조정에도 전해집니다.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 군수를 급히 내려보내 요구를 들어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사관으로 파견된 안핵사 이용태가 봉기에 참여한 농민들을 동학교도라는 죄목으로 잡아들이고 그 가족까지 체포하자 농민들의 분노가 다시 거세집니다.
농민군은 한양을 향해 진격하고 정부에서는 관군을 파견하지만 농민군은 황토현과 황룡촌 전투에서 관군을 무찌르고 전주성까지 점령합니다.
전주는 당시 전라도의 중심지로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젖줄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전라도의 곡창 지대가 중앙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기층 민중에게 장악된 경우는 우리 역사에서 한 번도 없었고 정부는 크게 당황합니다.
그렇게 민씨 세력은 임오군란, 갑신정변 때의 실수를 반복하고 맙니다.
청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조선에 청이 또다시 들어오고 부르지 않은 일본군대까지 들어옵니다.
우선 양국 군대를 돌려보내는 게 우선이라 판단한 정부와 농민군은 전주 화약을 맺습니다.
이에 농민들은 스스로 전주성에서 철수하고 흩어집니다.
전주 화약에 따라 농민군은 집강소를 설치하여 폐정 개혁을 추진하였고 정부는 교정청이라는 개혁 기구를 설치합니다.
일본은 처음부터 동학 농민군 진압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청으로부터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빼앗아 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군은 인천에 상륙한 뒤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난 전라도로 가지 않고 곧장 한양으로 갑니다.
고종과 명성 황후를 인질로 잡고 경복궁을 점령합니다.
그리고 친일 개화 정권까지 세우고 군국기무처를 설치하고 개혁을 단행하는데 이것이 바로 갑오개혁입니다.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은 아산만에 상륙해 있던 청군을 공격해 청일 전쟁을 일으킵니다.
전쟁에서 패한 청은 일본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합니다.
시모노세키 조약은 청의 항복 선언을 구체화한 조약으로 우리 조선과는 무관합니다.
그런데 조약 1조에 청국은 조선이 완전한 자주 독립국임을 인정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일본은 조선에 대한 주도권을 거머쥡니다.
그리고 청은 일본에게 랴오둥반도, 타이완 등을 할양하고 배상금까지 지불합니다.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러시아는 프랑스, 독일과 함께 일본의 중국 진출이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한다고 주장합니다.
삼국의 간섭으로 일본은 랴오둥반도를 청에 돌려주는 대신 배상금을 늘립니다.
제2차 봉기 때는 제1차 봉기 때 참여하지 안했던 북접 세력도 참여합니다.
전봉준이 이끄는 남접군과 손병희가 이끄는 북접군의 논산에서 연합 부대를 형성하고 공주를 통해 한성으로 향합니다.
공주 우금치에 도착하니 일본군과 관군이 이미 총을 겨누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치열한 전투를 벌이지만 우세환 화력의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에 크게 패합니다.
이후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 부대는 전라도 각지에서 농민군 진압작전을 펼치고 양반, 향리들이 조직한 민보군도 농민군을 공격합니다.
동학농민군 지도자 대부분이 체포되거나 처형되고 1895년 전국 각지의 농민 봉기가 모두 진압되면서 동학 농민 운동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위로부터의 개혁인 갑신정변, 아래로부터의 개혁인 동학 농민 운동도 실패로 끝이 납니다.
좀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BAwITjIucEU&t=33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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