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제외교

중국풍은 유럽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by KS지식 - 문화 YouTube 2022. 12. 23.
반응형
SMALL

[유럽을 강타한 중국풍]

 

유럽 상류층은 계몽 운동과 상관없이 중국 상품을 꾸준히 선호했습니다.

특히 몽테스키외의 조국인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는 놀라울 정도로 중국 상품에 집착했습니다.

그가 통치했던 72년 동안 파리는 유럽 유행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프랑스는 스페인을 제치고 유행의 최첨단 국가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루이 14세는 경제 발전을 위해 공장을 세워 사치품을 생산하고 소비를 장려했습니다.

심지어 아들에게 프랑스산이 아닌 옷은 태우라고 명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 태양왕이라 칭하며 수많은 중국 상품을 소장했는데, 중국풍 수공예품 같은 모방품들이었습니다.

1836년 프랑스 극작가 발자크는 소설 금지에서 이런 수공예품에 시누아즈리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중국풍이라 해석되는 이 말은 유럽인이 이해하고 상상하는 중국적인 분위기를 말합니다.

발자크 이후 사람들은 중국 스타일의 상품을 모두 중국풍이라 불렀습니다.

처음에는 유럽 상인이나 여행가들이 광저우에서 가져온 중국 물품에 유럽 본토 예술이 가미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다 바로크, 로코코, 고딕 등 예술 형식에 이국적 풍미, 즉 동방의 품격이 더해졌습니다.

16세기 유럽에서 이러한 중국풍이 성행했습니다.

18세기에는 그들의 식민지까지 광범위하게 유행했고 유럽 본토에서 유행한 로코코 예술형태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장식품, 건축, 무용, 가구, 회화 등 다방면으로 독특한 로코코 중국풍을 창조했습니다.

계몽운동의 영향으로 중국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지만 중국풍 유행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유럽인은 중국 예술과 동방 예술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들 눈에는 모두 이국적인 분위기일 뿐이었습니다.

1684년과 1686년 시암의 아유타야 왕조 국왕 나라이는 유럽 출신 재상 콘스탄틴 파울콘의 건의로 루이 14세에게 사절단을 파견했습니다.

이들은 동맹을 맺어 영국의 확장을 저지하자고 제의 했지만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마르세유궁에서 국왕 접견시 입었던 복장과 예물이 파리 사교계를 사로잡았습니다.

중국에 다녀온 예수회 선교사들이 이를 알아보고 그것들이 시암이 아니라 중국에서 온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프랑스인들은 이국적 분위기를 풍기는 중국 예술품의 품격에 매혹됐던 것입니다.

1700년 루이 14세는 궁중에서 중국 축하 파티를 열고 다양한 중국풍을 선보였습니다.

스스로 강희제로 분장하고 나타났을 때는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중국풍은 옷차림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중농주의의 영향을 받은 루이 15세는 중국 황제의 친경 의식을 모방했습니다.

백성이 보는 앞에서 손수 쟁기질을 하면서 농업을 장려했습니다.

유럽의 다른 왕실도 프랑스처럼 적극적으로 중국풍을 받아들였습니다.

1731년에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고 중국과 무역을 시작한 스웨덴은 광저우에서 차와 자기를 수입했습니다.

울리카 왕후가 이 편지를 썼을 때는 무역을 개시한 지 20여 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당시 편지에 등장하는 화병, 자기, 탁자, 자수, 신하들의 복장은 물론 망루와 군사 훈련법 등 다양한 중국 문물이 전해졌습니다.

유럽의 중국풍은 회화 예술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러 작품에서 중국, 동방의 이국적 열정이 표출됐는데, 특히 18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로코코 화가 프랑수아 부셰는 중국풍 인물, 복장, 건축물, 자연 경관과 생활상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은 유럽인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그러나 실제와는 거리가 있어서, 그림에 등장하는 젊은 중국 여성의 자태는 오히려 프랑스 여성과 비슷했습니다.

중국풍은 유럽이 인도, 중국 등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상업과 예술이 융합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유럽에 다양한 중국 관련 기록을 보냈는데 이는 광저우의 차, 자기와 함께 유럽인의 중국 인식에 상상력과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었습니다.

이는 국제적 경제, 문화 교류의 산물로, 중국풍이 유럽에서 성행한 것처럼 청나라 황실도 예수회 선교사들이 전해온 서양풍에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