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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외교

중국차 - 북아메리카 진출

by KS지식 - 문화 YouTube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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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차의 북아메리카 진출]

 

미국인의 일상에서 티백 차는 차를 마시는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립턴 홍차에서 시즈오카 녹차까지 브랜드는 달라도 티백 차는 편리한 커피 대용품으로 현대 생활 속에 녹아 있습니다.

상품화된 티백 차에서는 찻잎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오랜 차, 한약 문화를 가진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로 고단수 판매 전략입니다.

미국도 차를 마시는 역사가 오래되었습니다.

과거 영국 식민지였을 때부터 유럽이 북아메리카와 아시아-유럽 사이의 국제 무역을 개척한 결과입니다.

처음 중국차를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가져온 장본인은 영국 동인도 회사였습니다.

1698년 영국 동인도 회사는 차 수입 독점권을 획득했습니다.

그러나 직접 팔지는 않았는데 광저우에서 구입한 차는 영국으로 갔다가 중간상에 의해 북아메리카로 왔습니다.

중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해상 운송은 오랜 시간이 걸렸기에 장기 보관이 가능한 발효차만 들여왔는데, 이는 유럽인의 차 문화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미국인은 녹차보다는 주로 블랙 티라 부르는 홍차를 즐겨 마십니다.

영국 동인도 회사가 독점 수입한 차는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무거운 세금때문에 매우 비싸게 팔렸습니다.

그러다 네덜란드,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 등이 몰래 들여온 차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밀무역이 성행하면서 영국 동인도 회사는 큰 위협을 받았습니다.

1760년대 후반 북아메리카 뉴잉글랜드 지역은 매년 차 소비에 100~200만 파운드, 많을 때는 600만 파운드까지 지출했습니다.

그런데 전체 소비량의 3분의 2, 심할 때는 90%가량의 차가 밀수로 들어왔습니다.

정식으로 영국에서 수입된 차는 10%도 되지 않았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영국 정부가 나섰습니다.

1773년 5월 10일 영국 의회는 차 조례를 통과시켜 동인도 회사가 직접 북아메리카에 차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했습니다.

이는 북아메리카 식민지 역사의 큰 변화를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1767년 영국 의회는 식민지에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톤젠드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그런데 6년만에 다시 차 조례를 통과 시킨 것입니다.

이는 나중에 대표가 없으면 세금도 없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미국 독립운동의 계기가 됩니다.

차 조례 이후 영국 동인도 회사의 차 가격은 밀수품보다 저렴해졌습니다.

북아메리카 시장을 휩쓴 우이산 홍차는 원래 3펜스의 세금을 포함해 파운드당 3실링이었습니다.

네덜란드 등이 들여온 밀수품 가격은 2실링 1페니였습니다.

밀수품이 질은 떨어져도 11펜스나 샀기에 시장에서는 우위를 점했습니다.

그런데 차 조례 통과 이후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영국 동인도 회사 홍차 가격이 파운드당 2실링으로 떨어져 밀수품보다 1페니가 싸졌습니다.

영국 의회가 이 법안을 통과시킨 목적은 온건한 방법으로 차 가격을 조절하여 동인도 회사의 재정 위기를 해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소비자는 동인도 회사의 차를 싸게 살 수 있으니, 회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득이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주민들은 영국 의회와 동인도 회사의 바람과는 완전히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그날 보스턴항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가 확보한 약 1,700만 파운드의 차가 하역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편 영국 동인도 회사와 소비자 사이에서 이득을 취하던 중간상,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손잡은 밀무역 상인들은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북아메리카 시장에서 약 2~5년간 소비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 밀수품보다 1페니나 싼 가격으로 시장에 풀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생존에 직접적인 압박을 받은 중간상과 밀무역 상인들은 힘을 합쳐 저항했습니다.

1773년 12월 16일 자유의 아들이라는 결사 단체가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을 일으킵니다.

이날 밤 340상자, 9만 2,000파운드에 해당하는 차가 불에 탔습니다.

여기에는 중국 푸젠에서 온 우이산 홍차가 다량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안 되어 미국 독립 혁명이 폭발했습니다.

범위를 좁혀서 보면, 혁명의 출발점이 차 중간상과 밀수업자들의 반란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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