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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외교

동방의 차가 북아메리카 독립과 관계가 있다고?

by KS지식 - 문화 YouTube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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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차와 북아메리카 독립의 관계]

 

상인들읜 반란 행위가 있자 때맞춰 중국차에 관한 황당한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차는 중국 땅에서 자란 것이고 중국은 무서운 동방의 전제주의 국가입니다.

이런 나라의 노동자 손에서 생산된 차가 악랄한 영국 동인도 회사의 손을 거쳐 뉴잉글랜드로 왔습니다.

이런 차를 마시면 동방의 전제주의가 북아메리카 식민지 주민의 몸속에 들어와 자유를 열망하는 영혼을 빼앗는다. 이는 마치 중국차를 재배하는 노동자들이 그들의 황제에게 그러는 것처럼, 식민지 주민이 영원히 영국 군주의 발밑에 무릎 꿇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황당한 해석은 동시대 중국 청대사회에 유행한 영혼을 훔치는 귀신 이야기처럼 공포심에 소름이 돋게 했습니다.

차에 대한 이러한 주관적 억측은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는 황궁에서 백성이 사는 마을 골목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도 차와 영혼을 연결 짓는 말이 흘러나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영국 동인도 회사도 그런 인식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와는 별개로 영국의 과도한 세금 징수가 촉발한 식민지 미국의 독립 혁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습니다.

중국차에 독이 있다는 선동은 영국 동인도 회사가 재정 위기를 벗어나려던 민감한 시기에 터져나왔습니다.

이로써 동인도 회사는 억압적이며 지역에 피해를 주는 회사로 인식되었습니다.

차 조례가 상인은 물론 식민지 주민 모두의 삶을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영국 동인도 회사의 배가 차를 가득 싣고 대서양에서 북아메리카를 향해 항해하고 있을 때, 뉴욕의 한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차를 가득 실은 배가 우리 항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우리 미국인을 노예로 만들고 독살하려 한다. 

비난의 화살은 차, 특히 영국 동인도 회사가 싣고 오는 중국차에게 향했습니다.

차가 영혼에 전제주의를 침투시킨다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시기와 장소를 불문하고, 북아메리카에 팔려 온 차는 식민지 애국자들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1773년 12월 보스턴 차 사건 발생 4일 후 보스턴 가제트 신문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렉싱턴의 애국시민들이 집회를 열어 네덜란드, 영국이 수입한 어떤 종류의 우이산 홍차 소비도 반대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시민들은 마을에 있는 차도 수고하여 태워버렸습니다.

뒤이어 찰스턴에서도 중국차를 소각했습니다.

 

이 두 지역은 모두 차 사건이 있은 보스턴 외곽에 있었습니다.

렉싱턴은 1775년 4월 19일 독립 전쟁의 첫 총탄을 쏘아 올린 곳으로 그보다 1년 반 앞서 중국차의 운명에 불을 붙인 최초의 마을이기도 했습니다.

중국차에 화살이 집중되자 작은 마을, 사교 모임, 심지어 개인도 차를 불태우며 차 조례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중국차는 이제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었습니다.

동인도 회사로 대표되는 영국 군주의 폭정에 맞서 정치, 경제적 자유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상징이었습니다.

언론이 퍼뜨리는 차가 당신의 몸속에 전제주의를 주입한다.는 식의 논리에 신비적인 색채가 더해지면서 식민지 주민의 중국 인식은 더욱 왜곡되었습니다.

유럽에서 계몽 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이미지는 갈수록 나빠졌는데 이는 중국차를 악마화하는 여론의 영향이 컸습니다.

계몽 운동은 전제주의에 반대하고 중국차를 악마화하는 정치 세력과 손발이 맞았습니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몽테스키외가 중국을 전제주의의 대명사로 꼽은 것은 차가 영혼을 빨아들인다는 논리의 고상한 표현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당시 서구 사회의 심리 상태도 한몫했습니다.

1450~1750년 사이 유럽은 300여 년에 걸쳐 마녀재판이 횡행하면서 무고한 희생자가 많이 생겼습니다.

광기는 유럽 식민지인 북아메리카까지 번지면서 5,000여 건에 달하는 마녀재판으로 2,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마녀재판은 종교, 사회,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했던 사회상을 반영합니다.

이는 차 속에 독이 있다는 말이 퍼지던 때와 불과 20여 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마녀재판 때의 사회 분위기가 고스란히 차 사냥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식민지 미국 렉싱턴에서 벌어진 차 소각은 마녀 화형식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정치인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비판할 때 마녀사냥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단순한 수사를 넘어 역사적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중국차의 악마화는 북아메리카 식민지 주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독립 혁명 전에는 모두 중국차를 좋아했습니다.

매사추세츠 고위 관료들이 출처 불명의 네덜란드 차 밀수에 투자할 정도였습니다.

뉴욕 등 대도시에서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오후 차를 마시는 사교 모임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보스턴에서 남쪽으로 뉴욕과 필라델피아까지, 동부 연안 지역은 일찍부터 중국차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습니다.

1730년대에는 이런 차 문화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었는데 보스턴 차 사건이 있기 40여 년 전이었습니다.

1731년 뉴욕의 한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립니다.

 

차를 마시면 치명적 휴유증이 있을 수 있으니 이런 습관을 고쳐야 한다. 재력, 건강, 행복에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몸에 해로울 뿐 아니라 영혼의 자유도 방해받고 문란해진다.

 

차를 마시는 행위가 본인은 물론이고 자신이 죽은 뒤에 가족들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글쓴이는 또 차가 이역만리 동방에서 왔으니 두렵다고 했습니다.

무지는 공포를 만들고 유언비어를 생산합니다.

군중 심리에 공황과 히스테리를 불러왔는데 이러한 현상은 세계 역사 곳곳에서 여러 번 있었습니다.

차를 마시려면 차와 다구 같은 물품 외에도 예절이 필요합니다.

유럽 사람들은 동방식, 중국식 예절이 여성성이 강하여 남성을 나약하게 만든다고 경계했습니다.

차를 마시면 아편에 중독된 터키 사람들처럼 남성의 진취적 정신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강한 음기가 양기를 눌러 북아메리카 식민지가 계속 영국의 통제를 받게 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차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영국 동인도 회사 선박이 보스턴 항구에서 출하를 기다리고 있을 때 누군가 익명으로 보스턴 가제트에 기고문을 싣습니다.

 

동인도 회사의 배가 전염병뿐만 아니라 천연두도 싣고 왔다는 내용입니다.

식민지 애국 시민들은 영국 동인도 회사의 차 판매를 반대하고 영국과 싸우자고 선동했습니다.

차는 동방의 전제주의를 실어 나르는 사악한 물건이자 혁명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차는 영국의 북아메리카 통치를 지속시키는 공포의 물건이었습니다.

독립 혁명 전에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보스턴 차 사건때 개인이 차를 소유하다 발각되면 비난받기는 했지만 차 자체를 악마화하는 목소리가 주류는 아니었습니다.

반대 여론이 중국 비단, 자기 등 다른 상품으로 확대되지도 않았습니다.

차 사건이 일어나기전 결사단원들이 보스턴 가제트 발행인 벤저민 에데스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들은 중국에서 만든 잔 하이완에 럼주를 담아 마셨습니다.

 

잔에는 중국인의 생활상이 선명하게 그려져있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중국차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식민지 해방 투쟁의 일환이었을 뿐 덕 확대되지는 않았습니다.

차 외에 중국풍 짙은 칠기, 자기 등은 수요를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잘 팔리는 인기 상품이었습니다.

1775년 4월 19일, 1년 전 중국차를 불살랐던 렉싱턴에서 미국 독립 혁명을 향한 첫 번째 총성이 울렸습니다.

차에 대한 분노는 대영 제국에 대한 무장 투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독립 혁명이 끝나자, 악마 같았던 중국차 소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1784년 1월 14일 미국의회는 영국과 맺은 파리 조약을 비준하고 국제 사회에 독립 주권국임을 천명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경제 봉쇄로 미국 상인들은 서인도 제도에서 무역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동인도 무역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찾습니다.

1784년 2월 22일 워싱턴 대통령의 생일날, 신생 독립 국가인 미국의 뉴욕항에서 중국황후호가 광저우를 향해 출항했습니다.

 

중국차를 사기 위해서였습니다.

독약, 전염병, 전제주의 화신이라는 비난은 이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미국 상인과 밀수업자들이 영국 동인도 회사를 끌어내리자 차는 다시 부와 자본, 국제 무역이라는 출발점으로 돌아왔습니다.

미국은 차를 포함해 북아메리카에서 진행되는 모든 무역의 중심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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