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만에 끝내는 기본 세계사 27편 -식민지 쟁탈전(제국주의)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식민지를 잃고 난 후 다시 동아시아 지역에서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선두에 선 나라가 바로 영국이었습니다.
영국은 인도에서 다른 유럽 경쟁 국가들을 차례차례 몰아내다가 결국 1756년부터 1764년까지 계속된 7년 전쟁에서 프랑스에 승리함으로써 인도의 패권을 독차지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인도가 대영제국의 일부가 된 것은 아니었고 인도를 지배한 것은 동인도회사였습니다.
이 단체는 본래 영국의 민간 무역 상사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정부와 비슷한 형태로 변화했습니다.
19세기 중반까지 공식적인 인도의 지배자는 토후들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영국이 인도 전역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인도를 근대화하려 했는데요 영국인들이 생각한 근대화란, 곧 서구화로서 이 과정에서 인도인의 고유한 생활방식과 문화는 거의 무시되었습니다.
인도에 생산성 있는 산업 시설을 건설하고 주민들의 생활조건을 개선하는 것은 영국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중요한 인도의 생산품은 아편이었는데요 영국 상인들은 아편을 이용해서 한 가지 오래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예로부터 중국과의 무역은 쉽지 않았는데요, 유럽인들은 중국의 상품을 원했으나 중국에서는 유럽 상품에 대한 수요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국 상인들은 이제 돈을 내는 대신 아편을 가지고 중국의 차, 도자기, 비단을 구입하려 했습니다.
이 사악한 사업은 성공을 거두었고 중국의 아편 소비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수백만의 중국인들이 아편에 중독되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대응을 해야했던 중국 정부는 영국 상선에서 대량의 아편을 압수하고 위험한 마약의 반입을 통제하려하자 영국은 전함을 보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아편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은 1839년에서 1842년까지 그리고 1856년에서 1860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벌어졌습니다.
영국군은 프랑스군과 공동으로 베이징까지 진격해 황제의 궁궐을 약탈하고 불을 질렀습니다.
중국은 일부 지역을 영국과 프랑스에 할양하고 항구를 개방해야 했고 중국 경제는 거의 유럽의 정부와 기업의 손아귀에 들어갔습니다.
심지어 중국을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나누어 가지려는 계획까지 세워졌는데 실현되지 않은 것은 세 나라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왕은 이를 거부하고 미국인들을 추방했지만 8달 후에 패리는 다시 열 척의 전함을 이끌고 와서 조약 체결을 강요했고 일본은 결국 이에 굴복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 않고 젊은 왕 무츠히토의 지도하에 서양 문물을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무츠히토의 목적은 다시는 다른 나라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일본을 경제적, 군사적 강국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무츠히토는 이를 위해 경제 강국들의 모든 장점을 모방하려고 했는데 이 학습의 성과는 괄목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일본인들은 한 역사가가 이렇게 표현했는데요, 전 세계사를 통틀어 가장 우수한 학생이라고요.
일본은 개항한 지 50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근대 산업 국가로 변모했고 곧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미국은 일본과의 조약 체결을 통해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 외부의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든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세계 최강의 제국주의 국가는 영국이었는데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태평양의 여러 섬들까지 아우르는 세계 제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태평양의 나머지 섬들은 네덜란드와 프랑스, 포르투갈이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런 엄청난 인적 손실이 가져온 피해는 참으로 심각한데요 많은 지역에서 전통적인 부족 사회의 구조가 파괴되었고 이에따라 사람들은 삶의 토대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아프리카 쟁탈전은 1869년 수에즈 운하의 개통과 함께 시작되어 19세기 말에 이르면 아프리카 대륙의 거의 전부가 유럽 열강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고 독일이 식민 열강의 대열에 합류한 것은 1871년에 통일 제국을 이룬 후의 일이었습니다.
19세기 초에 등장한 독일 민족 국가의 이념은 반세기도 훨씬 더 지나서야 현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독일 역시 식민지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고 아프리카 연구가 카를 패터스는 독일을 식민지 쟁탈전으로 이끈 주요 동기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 바 있습니다.
독일 민족은 지금까지 세계의 분할 과정에서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고 지난 수백 년 동안 놓친 것을 만회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요
지구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인 아프리카의 식민지화는 이 대륙의 거주민인 흑인이 열등한 인종이라는 사이비 학설을 통해 정당화 되었는데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문화와 문명을 가져다주려고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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