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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현대세계사] 11편. 공산당이 중국을 지배한 진짜이유? (10분 ver)

by KS지식 - 문화 YouTube 2022.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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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세계사] 11편. 공산당이 중국을 지배한 진짜이유? (10분 ver)

공산당 결사대 20명은 치열한 교전 끝에 국민당 공안국 교도소를 점령하고 수감자들을 탈출시킵니다.

그리고 광저우 시내 곳곳에 근무시간 8시간 보장! 노동자 임금 인상! 등의 포스터까지 내걸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광주기의라고 부르는 광저우 공산당 봉기입니다.

그러나 국민당군은 당시 광저우 앞바다에 정박해 있던 미국, 영국 해군의 도움을 받아 공산당원들을 진압합니다.

당시 검거된 공산당원 중에는 20대 초반의 앳된 주문옹, 진철군이라는 청년도 있었습니다.

둘은 위장 부부로 행세하며 국민당에 맞서 싸우다가 검거된 것인데 이 둘은 국민당의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192826일 사형 집행의 날이 왔을 때, 총살형을 앞두고 집행관이 둘에게 물었는데 마지막 할 말이 있는지 묻습니다.

그때 남편 역할을 했던 주문옹이 마지막 소원이 있다고 하는데 이 여자와 위장 부부로 살아왔지만 죽을 때만큼은 진짜 부부로 죽고싶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결혼사진 한 장만 남기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국민당은 이를 허락하고 둘은 형장의 이슬이 되기 전 철창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결혼사진 한 장을 찍게 됩니다.

그리고 주문옹은 하늘을 보고 외치는데요, 이제 곧 울릴 국민당군의 총성은 우리 결혼을 축하해주는 예포다라고요.

청나라가 망한 후 아수라장이었던 중국이 장제스에 의해 통일된 순간입니다.

중국이 통일된 마당에 장제스 입장에서는 거칠 것이 없었고 눈엣가시였던 공산당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에 들어갑니다.

당시 공산당의 근거지는 강서성이란 곳이었고 장제스는 그 공산당 근거지를 포위해서 공산당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로 합니다.

1934년이 되어 장제스는 50만 병력, 200여 대의 전투기로 총공세에 들어가고 철저하게 이중 봉쇄까지 해서 탈출 퇴로를 막는 치밀함까지 보입니다.

마오쩌둥이 이끌던 약 10만 명의 홍군은 일생일대의 결심을 하고 모두 걸어서 포위망을 뚫고 여기서 탈출하자는 계획입니다.

중국사 최대의 도보 탈출 작전의 시작이었는데요, 당시 중국 상황은 1931년에 일본이 이미 무력으로 만주를 침공한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운 후 공산당 토벌이든 뭐든 해야했습니다.

그런데 장제스는 정말 이상한 결정을 하는데, 내부의 적을 먼저 없앤 후 외부의 적을 처리하자라는 논리를 주장합니다.

중국 상황이 이렇게 극에 달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든 말든 장제스의 목표는 오로지 공산군 소탕뿐이었습니다.

홍군이 걷고 또 걷는 행군을 하다가 지쳐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을 때 귀주성의 한 마을에 도착하는데 이때 마을 주민들이 준 전통주를 마시고 깜짝 놀랍니다.

술맛이 너무 좋았고 술로 상처 난 부위도 소독하고 다시 힘을 얻어 행군을 다시 시작합니다.

이후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이후, 그때 마을에서 마신 술을 회상하며 고마워했다고 하는데 그 술이 아니었다면 대장정이 성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술을 중국의 국주로 명명하는데 그 마을 이름이 바로 마오타이였고 홍군이 마셨던 그 고마운 술이 바로 마오타이주입니다.

일본군이 만주를 점령하는 등 이미 중국이 침공당하던 상황에서도 장제스는 오로지 공산당 토벌만 외쳐서 중국 곳곳에서는 불만이 터져나왔습니다.

심지어 같은 국민당 내부에서도 공산당과의 내전을 중지하고 일본과 먼저 맞서 싸우자라는 의견이 나옵니다.

1945815일 일본이 원자폭탄 2발을 맞고 태평양 전쟁에서 패하고 우리나라는 해방되고 중국은 중일전쟁이 종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공동의 적이 사라졌으니 중국 대륙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은 대륙의 패권을 놓고 마지막 혈전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객관적으로 전력이 뒤졌던 공산당의 홍군이 써히 국민당군을 압도하기 시작하는데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민중들의 민심을 얻으며 전쟁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마오쩌둥은 휘하 홍군 병사들에게 철저히 명령을 내리는데 예를 들면,

절대 민간인들의 재산을 훔치지 마라. 무언가 신세를 지면 꼭 갚아라. 잠자리를 빌렸다면 꼭 아침에 나올 때 이불을 개고 나와라. 등의 세심한 명령을 합니다.

중일전쟁이 끝나고 겨우 100만이었던 홍군은 200만의 대군으로 성장해 나갑니다.

반면 장제스는 계속 민심이 떠나갈 일만하는데, 1938년 일본군이 베이징을 점령하고 남하를 시작하자 일본군을 수공으로 막는다면서 황하의 댐을 일부러 폭파시킵니다.

127일이 되자 장제스는 미 해군 함대의 호위를 받으며 쓸쓸히 대만으로 탈출합니다.

장제스는 대만을 접수하고 엄청난 차별정책을 펼치는데 외성인이라고 부르는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국민당과 내성인이라고 부르는 대만 원주민들을 차별하기 시작합니다.

본토인들이 원주민들을 탄압하자 당시 대만인들 사이에서는 개가 떠나니 돼지가 왔다는 말까지 나돌았습니다.

1947227일 타이베이 시내에서 당시 전매품이던 담배를 몰래 팔던 내성인 노파를 군민당 소속 단속반이 집단 폭행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때 내성인들은 그때까지 쌓였던 분노를 터뜨리는데요, 다음날인 228일부터 수도 타이베이뿐만 아니라

대만 전국에서 반국민당 시위가 벌어지는데 국민당은 기관총까지 동원해서 무자비한 진압에 들어갑니다.

이에 거의 3만 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고 지금도 타이베이에 가면 228 민주화운동 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대만으로 쫓겨난 장제스는 대륙 수복을 외치며 평생을 대만에서 살다가 197545일 타이베이에서 숨을 거둡니다.

장제스의 묘는 가묘로 나중에 국민당이 다시 대륙을 탈환하면 자신의 유해를 대륙에 다시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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