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세계사] 10편. 청나라를 타도하라! - 신해혁명 (10분 ver)
철도 국유화 반대를 구실로 대규모 반청 운동을 벌이기 시작하는데 특히 쓰촨 지방에서는 시민이 10만명 이상 모인 대규모 민중 봉기가 일어납니다.
당황한 청나라 정부는 민중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병참기지였던 후베이성 우창에 있던 병력을 쓰촨 지역으로 출동시킵니다.
우창의 병력이 갑자기 텅 비게 되고 병력 공백이 생긴 우창의 혁명 조직은 지금이 적기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1911년 10월 10일 봉기를 일으키는데 혁명군의 거센 진격 앞에 당시 우창을 담당하던 청나라의 관리는 도주하고 우창이 혁명군의 손에 들어갑니다.
지금도 대만은 이 10월 10일을 쌍십절이라 부르며 대만 건국 기념일로 기리고 있습니다.
1911년 10월 10일 봉기를 시작으로 300년 청왕조 타도를 목표로한 신해혁명이 시작됩니다.
쑨원도 미국에서 모금 활동을 벌이다 우창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191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중국 민중의 대대적인 환호를 받으며 상하이를 통해 중국으로 귀국합니다.
그리고 각 지역의 혁명군 대표들을 모아 1912년 1월 1일 난징에서 중국 최초의 공화국인 중화민국 성립을 선포하고 임시 대총통 자리에 오릅니다.
중화민국 성립 선포가 바로 신해혁명이 완성되던 순간입니다.
1912년 2월 13일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는 오늘부로 퇴위하겠다는 선포를 합니다.
이렇게 지난 3,000년 동안 왕이 대륙을 지배해온 군주제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고 청나라는 역사속으로 사라집니다.
위안스카이는 쑨원과의 약속대로 중화민국의 정식 대총통 자리에 오르는데 이 위안스카이란 인물을 중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배신자가 됩니다.
중화민국 총통 자리에 오른 위안스카이는 슬슬 본색을 드러내는데요, 권력을 혼자서 차지하기로 작심합니다.
1913년이 되자 중화민국 내 친 쑨원 세력을 모두 숙청하고 쑨원과 함께하는 정치세력의 정치활동을 불법화합니다.
1차 대전 당시 일본은 영국편이었고 영국은 독일과 싸우고 있으니까 일본에게도 독일은 적인 셈이었습니다.
이에 위안스카이 정부는 항의하는데 일본은 위안스카이 정부를 지지하고 재정적 지원을 하겠다라는 말로 위안스카이 정부를 유혹합니다.
돈 앞에 장사 없다고 위안스카이는 산둥반도의 이권을 일본에 넘깁니다.
전국적인 반 위안스카이 운동에 결국 위안스카이도 꼬리를 내리며 황제 제도는 없었던 일로 하게 됩니다.
1916년 3월 군주제를 취소한다고 발표한 후 자리에서 내려오고 3개월 후에 화병으로 급사합니다.
위안스카이가 죽은 후 중국은 말 그대로 헬게이트가 열리는데 무주공산의 권력자 자리를 놓고 10여 개의 파벌 간의 치열한 내전이 벌어지면서 실질적으로 무정부 상태가 됩니다.
중국 민중들은 들고일어나는데요, 1919년 5월 4일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에 몰려온 대학생들이 치욕적인 비밀 협상으로 우리 중국 땅 산둥반도가 일본으로 넘어가게 된 것을 규탄한다고 외치면서 대규모 반일 시위를 펼칩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의 5·4운동입니다.
베이징에서 시작된 이 반일 시위는 상하이, 난징 등 중국 전역으로 번지는데 1919년 3월 1일, 조선에서 일어난 3·1운동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5·4운동의 중요한 의미는 중국 역사상 거의 처음으로 지식인, 노동자, 농민이 하나로 뭉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국민당, 중국공산당을 창당시킨 원동력이었다는 점입니다.
공산당과 손을 잡은 국민당은 군사를 체계적으로 훈련하기 위해 군사학교를 세웁니다.
1924년 6월 쑨원의 고향인 광저우에 황포군관학교를 만드는데 우리 조선의 독립투사들도 대거 입학했던 곳입니다.
이 황포군관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제스가 취임합니다.
그는 일본 군관학교 출신 전문 군인이었습니다.
1차 국공합작으로 북벌을 위한 모든 준비가 다 끝났던 1925년 쑨원은 갑작스러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쑨원이 죽고나서 공백이 된 국민당 권력을 두고 다툼이 생기는데 황포군관학교 교장이었던 장제스가 권력 싸움에서 승리하면서 쑨원의 권력을 계승합니다.
그런데 장제스는 공산당을 싫어하는 반공주의자였고 권력을 혼자 독식하고 싶어했고 중국 대륙의 권력을 공산당과 반으로 나누기 싫었던 겁니다.
상하이 시내에서만 1만 명이 넘는 공산당원이 장제스군에 의해 목슴을 잃고 중국 전역에서 최대 30만 명 이상이 희생됩니다.
이렇게 1차 국공합작은 깨지고 본격적으로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내전이 시작되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의 국공내전의 시작입니다.
장제스의 상하이 대학살 소식은 광저우까지 전해지고 격분한 광저우의 공산당원들은 국민당을 상대로 한 반격을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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