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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투리시간에 공부하는 한국사] - 40. 광복과 신탁통치

by KS지식 - 문화 YouTube 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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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투리시간에 공부하는 한국사] - 40. 광복과 신탁통치


1939년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영국, 미국, 소련, 중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사이에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는데 연합국의 승리로 전세가 기울자 미•영•중 3국 대표는 1943년 12월 이집트 카이로에 모여 일본에 대한 군사 행동과 전후 처리에 대해 논의합니다.
이 회담에서 발표된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처음으로 보장받습니다.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서 소련의 대일전 참전에 관한 비밀 협정을 체결하고 소련군이 1945년 8월 11일 한반도에 진주하게 됩니다.


독일이 항복하자 1945년 7월에 연합국들은 독일 포츠담에서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합니다.
여기서 포츠담 선언을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을 재확인하고 일본에 항복을 요구하지만 일본은 전쟁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에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고 결국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합니다.
이 때문에 광복 직후 한국은 미국과 소련 등 연합국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광복을 맞이했지만 임시 정부 요인들은 마냥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김구는 백범일지에 그 당시 감정을 이렇게 적어두었습니다.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소식이었다. 수년 동안 힘써 참전을 준비한 것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1945년 12월 미국, 영국, 소련의 외무 장관이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에서 한반도 문제가 다루어집니다.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에서 민주주의 임시 정부 수립과 이를 돕기 위한 미소공동위원회 개최, 최고 5년 신탁 통치 실시가 결정 됩니다.
신탁 통치안을 두고 사회주의 세력인 좌익과 민족주의 세력인 우익의 입장 차이가 드러납니다.
처음에는 좌익과 우익 모두 신탁 통치안에 반대하는데 좌익 세력은 임시정부 수립안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나서는 회의 결정 사안 지지 입장으로 바꿉니다.
우익 세력은 신탁 통치 반대 운동을 전개하는 동안 눈치를 보던 세력이 있었는데요,
바로 친일 반민족 세력입니다. 슬며시 신탁 통치 반대 운동에 가담하며 우익 진영에 줄을 섭니다.
그리고 열렬한 반공투사로 둔갑하고 좌익세력을 잡아들이는 애국 투사로 둔갑합니다.
심판을 받아야 할 친일 반민족 세력이 이렇게 부활하게 됩니다.


유엔은 인구 비례에 따른 총선거를 하기로 하고 이를 관리, 감독할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을 파견하지만 소련은 인구가 적은 북한에 불리하다고 거절합니다.
결국 유엔은 남한에서만 총선걸르 실시하도록 결정하는데 이는 곧 남북 분단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김구는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38도선을 베고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김구는 김규식과 함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협상 회의를 추진하고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미국과 소련 양군 철수 요구 결의문을 채택합니다.
하지만 통일 정부 수립 노력은 실패로 끝나고 김구는 암살되며 남한의 단독 선거가 결정됩니다.
이에 좌익 세력을 중심으로 반대 투쟁이 일어나는데, 1947년 제주도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참가자와 경찰 간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며 이를 규탄하는 제주도민들의 시위가 일어납니다.
시위를 진입하면서 인명사고가 발생하고 4월 3일에는 좌익 세력 주도로 무장 봉기가 일어나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제주도민이 희생됩니다.


이 사건이 제주 4•3사건인데 신고 접수된 희생자 수만해도 14,033명에 이릅니다.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로 불거진 좌우의 분열은 우리에게 두 가지 참혹한 결과를 안겨주었습니다.
첫째로 사람보다 이념이 우선시되면서 이념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고 결국 그런 생각과 감정이 쌓여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습니다.
둘째로 정의를 제때에 바로 세우지 못한것인데, 광복 이후 민족 반역자들을 단죄하는 것이 이루어져야 했었는데 그들은 슬그머니 반공을 외치며 순식간에 애국 투사로 둔갑한 것입니다.
1948년 5월 10일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주의 총선거가 실시되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게 됩니다.

아래 영상도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5MYAJ2iMoQ&t=31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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