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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투리시간에 공부하는 한국사] - 15. 병자호란과 광해군 중립외교

by KS지식 - 문화 YouTube 2022.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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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투리시간에 공부하는 한국사] - 15. 병자호란과 광해군 중립외교


임진왜란이 터지자 선조는 피란지인 평양에서 광해군을 서둘러 세자로 책봉하고 조정을 둘로 나누어 광해군이 별도의 조정을 이끌게 합니다.
광해군은 분조를 맡아 전쟁터로 나가게 되는데 전쟁터를 누비며 민심을 수습하고 군사와 군량을 모으며 의병을 지원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적장자가 아니었던 선조는 자신의 뒤를 적장자가 잇게 하고 싶었고 임진왜란 때 활약한 광해군의 인기가 높아지자 선조는 이를 질투합니다.


조정은 광해군 지지 세력과 영창 대군을 세자로 세우려는 세력이 서로 맞서며 광해군은 세자로 책봉된뒤 무려 17년이라는 세월을 숨죽이며 버팁니다.
1608년 선조가 죽으면서 광해군은 드디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전란으로 입은 피해를 복구하고 재정을 확보하는 등 민생안정에 전력을 다합니다.
대표적으로 대동법을 실시하여 백성들의 세금부담을 줄입니다.
전국 농지를 측량하고 세금 장부에서 빠진 땅을 찾아내는 양전을 실시합니다.
7년이라는 긴 전쟁을 거차며 많은 백성들이 질병으로 고통받자 허준에게 명하여 <동의보감>을 편찬하여 전국에 보급합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중국에서는 명이 쇠티하고 여진이 급격히 성장하며 누르하치를 중심으로 후금을 세우고 명을 침공합니다.
명은 조선에 지원을 요청하는데 광해군은 고민 끝에 강성해진 후금과 충돌을 피하는 명과 후금 사이에서 실리를 찾는 중립 외교 정책을 택합니다.
광해군은 일단 명의 요청대로 군대를 파견하지만 조선의 군대를 이끄는 강홍립을 불러 상황에 따라 대처할 것을 명합니다.
강홍립이 전장에 나가보니 후금의 전투력이 매우 막강하여 더 이상 싸우지 않고 후금을 찾아가 투항하는데 이것이 강홍립 투항 사건입니다.


이후에도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쳐 전쟁을 피합니다.
인조 반정 후 광해군의 정책을 부정하며 명과는 친하게 지내고 금은 배척한다는 친명배금 외교 정책을 실시합니다.
결국 1627년에 정묘호란이 터지는데 후금은 광해군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을 내걸고 조선을 침략합니다.
이때까지만해도 조선과 후금 양국은 모두 전쟁을 원치 않아 형제관계를 맺기로 약속하고 전쟁은 마무리 됩니다.
9년후 1636년에 더 강력해진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조선에 군신 관계를 요구합니다.
이때 조정은 청과 화의해야 한다는 주화파와 싸우자는 척화파로 나누어집니다.
결국 조선은 척화파의 주장에 따라 청의 군신 관계 요구를 거부합니다.
이에 1636년 청 태종 홍타이지가 직접 12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하는데 이것이 바로 병자호란입니다.
청의 빠른 침입에 놀란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지만 청군의 선발대가 더 빨리 도착하여 강화도로 가는 길이 막힙니다.
인조는 방향을 돌려 세자와 함께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합니다.
청 태종은 남한산성 아래에서 대군을 거느리고 진을 치자 인조는 남한산성에 들어간지 47일 만에 항복을 결정합니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라 부르는 굴욕적인 항복의 예를 올립니다.


현종 때 서인과 남인 간에 권력 다툼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바로 예송입니다.
제1차 예송은 효종이 승하하면서 일어납니다.
효종이 죽자 인조의 부인이자 효종의 계모인 자의 대비가 상복을 얼마동안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는데 효종은 차남이기 때문에 문제가 더 복잡했습니다.
서인은 원칙에 따라 효종이 차남이니 1년 상을 남인은 왕위에 오른 이상 장자 대접을 해야 한다며 3년 상을 주장합니다.
당시 즉위한 지 얼마 안된 현종은 성리학 원칙을 들고 나온 서인의 손을 들어줍니다.
그로부터 15년 후 효종의 비 인선 왕후가 죽으면서 제2차 예송이 벌어지는데 서인은 원칙대로 9개월을 주장하고 남인은 왕비니깐 1년이라고 주장합니다.
현종은 남인의 주장이 왕권 강화에 도움된다는 걸 깨닫고 남인의 손을 들어주면서 권력이 남인에게로 넘어갑니다.
숙종 초까지 비판과 견제 속에서 붕당은 공존의 원칙을 지켜가며 비교적 건전하게 흘러옵니다.
붕당 정치의 키워드는 공존으로 한 세력이 독재하지 못하도록 소수파가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붕당 정치가 변질된 것은 일당 전제화가 되면서부터입니다.

 

15강 호란의 발발과 극복 광해군의 중립 외교.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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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이 여러분께 도움이 되었다면 아래 영상도 클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상에 더 자세한 내용이 있고 좋아요는 더 좋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nSf0fzyf4Gs&t=33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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