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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외교

우크라 난민을 위한 숙소는....? 길어지는 전쟁

by KS지식 - 문화 YouTube 2022.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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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의 포격으로 2천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된 마리우폴에선 희생자들을 임시로 길가에 묻고 있습니다.

도시 건물은 대부분 파괴된 상황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합의에 이르기 전에 휴전은 없다는 강경한 입장입니다.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 가운데 러시아군이 유일하게 점령한 헤르손에서 러시아군이 섬광 수류탄 등을 사용해 시위대를 해산하는 화면이 공개됐습니다.

헤르손에선 러시아군 점령 이후 시위대가 광장에 모여 항의 시위를 벌여왔습니다.

이 전쟁의 끝은 어디일까. 피해자인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이 전쟁을 어떻게 겪어내고 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침공 21일째인 지난 17일 경기도 남양주의 한 카페에서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를 만났다. 현지에 있는 그의 가족들 역시 살아남기 위해 최근 고향인 키이우를 떠나 폴란드 인근 도시로 피신했다. 

쉐겔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자유를 갈망하는 정서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쉽게 러시아에 무릎 꿇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난민은 남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국제사회와 그 구성원들이 각자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크라이나에 연대를 해주면 너무 감사할 것 같다"며 "피해자인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한 번 전쟁을 생각해주시고, 난민들이 다시 가족들과 함께 고향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 달라"고 말했다.

"민간인 2만 명 학살 소문… 날 따뜻해지는데 시체 묻지도 못해"

- 얼마 전부터 러시아군이 민간인 가리지 않고 폭격을 하고 있다. 민간인들이 키이우에 머무른다고 해서 도시를 지킬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아버지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

"60대 후반이다. 우크라이나 지역군에 등록하러 갔다가 고령이라 세 번 거절당했다고 하더라. 지역군은 동네 지킴이, 검문소 운영, 직접 전투부대 이렇게 세 부류로 나뉘는데 결국 세 번 거절당한 끝에 집지킴이로 배정받았다. 집지킴이는 무기를 지급받지 못한다. 남부 미콜라이우 주(Миколаївська область)에 외삼촌 가족이 사는데 외삼촌은 전투 부대에 합류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무기가 부족해서 부대원 10명 중 1명만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 3월 17일 기준 유엔 집계에 따르면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자가 726명(어린이 52명 포함)이다. 러시아군이 학교나 병원 등 민간 시설까지 공격하고 있다. 현지 상황이 어떤가. 

"우크라이나군이 지키고 있는 도시와 러시아에 점령당하거나 포위당한 도시의 차이가 크다. 일단 도시 자체가 점령되지 않은 곳들은 음식 공급이 된다. 가게들이 영업을 하고, 가서 돈 내고 물건을 살 수 있다. 시민들이 가게 부수고 물건 훔쳐가는 그런 일이 없다. 그런데 포위당한 곳은 음식 공급이 안 된다. 이미 러시아가 포위를 마치고 포격을 쏟아 붓고 있는 마리우폴 같은 곳은 그저께(3월 15일)만 해도 2만 명 이상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소식도 나왔다. 너무 가슴 아픈 건 이제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다는 거다. 시체를 묻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인력도 도구도 없다. 누가 언제, 어디에 묻혔는지 기록을 할 수도 없다." 

유엔이 러시아가 침공한 지 약 4주 만에 우크라이나에서 숨진 민간인이 900명을 넘어섰다고 미국 현지시간으로 21일 밝혔습니다.

유엔 인권사무소에 따르면 개전일인 지난달 24일 오전 4시부터 이날 0시까지 우크라이나에서 목숨을 잃은 민간인이 어린이 75명을 포함해 925명이며, 민간인 부상자는 어린이 99명을 포함해 1천496명으로 집계됐습니다.

또 유엔 난민기구와 유엔 산하 국제이주기구에 따르면 국외로 피란을 떠난 사람은 약 349만 명, 우크라이나 국내에서 난민이 된 사람은 약 648만 명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피해 피란을 떠난 사람 수도 1천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필리포 그란디 유엔 난민기구 대표는 "약 4주 동안 세계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지켜봤다"며,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수백만 명의 삶이 완전히 뒤집혔다"고 밝혔습니다.

 

‘한 분을 위한 공간이 있어요.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거처와 음식을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프랑스 파리)

‘거실 소파를 하나 내어 드릴 수 있어요. 여성이면 좋겠습니다.’(미국 뉴욕)

‘우리 집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환영합니다. 집은 작지만 어른 한 명과 아이 몇 명이 머물 공간은 있습니다. 저는 영어를 할 줄 알고요, 7세 아들도 여러분을 돕고 싶어 합니다.’(일본 도쿄)
 
이 웹사이트는 10대 하버드대 재학생 2명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애비 시프만(19)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우크라이나 지지 집회에 참석했다가 웹사이트를 만들어 우크라이나인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같은 대학의 친구 마코 버스타인(18)과 함께 의기투합해 사흘을 꼬박 작업한 끝에 이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얼른 전쟁이 끝나고 난민들이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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