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 유럽을 동서로 나누던 장벽이 갑자기 붕괴된 후, 안보 공백을 우려한 유럽 국가들과 미국, 러시아는 수년간 대화와 협상을 이어갔다. 냉전 종식이 인류의 영구적 평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도 가졌던 당시였다. 하지만 국가마다 현안과 비전은 달랐고 방법에 대한 의견 차이는 너무나 컸다. 그렇게 미결의 협상들이 낳은 결과가 결국 현재의 전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토
그 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바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처리 문제였다. 잘 알려진 대로 나토는 2차 대전 직후 소련의 팽창주의에 위협을 느낀 서방 국가들이 1949년 창설한 기구다. 창설 당시 12개국으로 시작, 소련이 해체되던 1991년 말에는 15개 회원국을 보유했으며 현재는 30개국이 가입돼 있다.
명칭이 말하듯 지리적 제한이 있는 이 동맹은 회원국의 총 군사지출비가 전 세계의 70%를 차지한다. 집단 군사 동맹 체제인 나토의 조약 내용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항목이 5조. 회원국 가운데 하나가 외부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을 경우 이를 동맹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 전체 또는 일부 회원국이 피습 동맹국을 지원하도록 규정하는 항목이다.
이런 집단 방어 원칙의 특성상 정치, 외교, 안보가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국가의 경우 가입이 쉽지만은 않다. 우크라이나를 포함 몇몇 동유럽 국가들이 수년 전부터 가입을 타진하고 있음에도 진척이 더딘 이유 가운데 하나다. 더구나 회원국 간 분쟁이 발생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2020년 프랑스-터키 갈등이 나토 내부 분쟁 가운데 가장 최근 발생한 경우다. 당시 군함 대치 상황까지 가자 나토는 회원국 간 분쟁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그보다 앞서 이미 프랑스는 1966년 미국과 핵무기 보유 문제로 갈등을 겪으며 독자노선을 위해 나토를 탈퇴했다가 2009년 재가입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나토의 존재 이유와 당위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 번째는 유럽의 미래와 관계된 문제. 내전을 제외하면 80여년 만에 유럽 대륙을 활보하는 군홧발을 보는 유럽인들은 어느 때보다 안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에는 나토 비회원국도 많다.
그러나 4년간 트럼프의 미국을 경험한 유럽인들은 그들의 미래를 미국 중심의 나토 연합군에 내맡기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일성으로 '미국이 돌아왔다'고 외쳤지만 트럼프주의는 여전히 미국 현실 정치에 존재한다. 때마침 유럽군 창설에 적극적인 프랑스의 목소리에 이들 나토 비회원국들은 귀를 기울이고 있다.
유럽연합(EU)도 본격적으로 회원국 가운데 나토 비회원국인 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 몰타, 아일랜드의 안보를 말하기 시작했다. 실제 이 나라들 가운데 다수는 나토보다 유럽군 창설이 더 자국의 안전 보장에 현실성이 있다고 본다. 나토의 존재 이유가 점점 당위성을 잃고 있는 첫 번째 이유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나토의 존재가 도마에 오른 두 번째 이유는 유럽의 과거와 관련된다. 동유럽이 소련의 영향권에서 서서히 벗어날 무렵, 미국과 유럽, 러시아는 나토의 역할과 범위를 둘러싸고 긴 협상에 돌입했다. 그 첫 번째에 해당하는 것이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있었던 미국과 소련의 암약.
독일의 통일이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당시 소련은 구 동독 땅에 나토 연합군이 진출하는 것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1990년 2월 9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미국의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는 고르바초프 주석(한 달 후 대통령 취임)에게 독일에 미군이 들어가도 나토 관할권은 동쪽으로는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고 안심시킨다.
러시아
나토의 동진 확장이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동유럽 국가들을 보호할 것이라는 주장과 관련해 러시아는 어떤 입장이었을까. 결과적으로 냉전 후 서방 외교안보 정책의 가장 큰 오류라면 러시아를 안보 라인 밖으로 내몬 것이었다. 소련이 붕괴된 시점에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특히 옐친 대통령은 한 때 나토에도 가입할 의사가 있을 만큼 친 서방 행보를 보였다.
앞서 언급한 1990년 2월 베이커 장관과의 회담에서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주석은 '나토가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안보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가 나토에 가입하면 되지 않겠냐'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공화당 집권 세력은 소련 그리고 훗날 러시아를 미국과 서방의 안보 라인 밖으로 밀어내려는 듯 보였다. 그리고 몇 년 후 역사는 그것을 또 한 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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