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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외교

아편전쟁 속에 숨은 정복자들의 윤리는 무엇이었을까?

by KS지식 - 문화 YouTube 2022.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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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 윤리 - 자본주의 정신]

 

우리는 지금까지 특수한 각도에서 아편 무역이 미국 상인들, 미국 자본주의 근대화 과정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막스 베버가 강조한 종교 개혁 사상, 즉 프로테스탄티즘입니다.

베버는 이러한 윤리가 서구에서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는 애초에 자본주의가 추구한 것은 폭력 등 비도덕적인 수단으로 한 이윤 축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상적인 자본주의는 합리적인 경영활동으로 이윤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달랐습니다.

19세기 미국의 가족 회사들이 축적한 자본은 중국에서 추악하고 부도덕한 아편 거래로 얻은 것이었습니다.

카를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자본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청나라 말기 아편 무역은 근대 유럽의 식민지 확장과 긴밀하게 엮이면서 베버가 말한 자본주의 정신을 짓밟았습니다.

아편은 중국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은화 유출, 무역 적자, 사회 빈곤, 무력해진 남성성, 퇴폐한 국민정신…. 

결과적으로 이 모든 일이 중국에서 벌어졌습니다.

물론 중국인도 아편의 위해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1838년 황작자는 많은 성에서 아편이 범람하여 매년 3,000~4,000만 냥의 백은 적자가 발생하는데 이는 내지에서 유통되는 것이 아니라 외국 오랑캐에게 흘러가기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편에 중독된 수많은 영혼이 마시고 뿜어낸 연기가 10여 명의 미국 백만장자와 미국 근대화를 도왔습니다.

이화 함께 자신의 육체, 가정, 사회, 국가도 허공에 날려버렸습니다.

중국은 아편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 아닙니다.

아편이 체제에 미치는 독성을 근원적으로 차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패했습니다.

이후 중국은 수십 년간 연전 연패하여 수습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오죽하면 손안의 담뱃대가 천조의 꿈을 날려버렸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한편 쿠싱, 러셀, 포브스, 델라노 등 미국 상인들이 대부로 추앙했던 오병감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편 전쟁 전후로 오씨 집안의 재력은 나라에 버금갈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중국의 주요 상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오병감을 비롯한 십상행 상인들은 쿠싱, 러셀, 포브스 일가처럼 인문교육, 의료 및 보건, 건설, 전기, 기계 같은 근대 사업에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오병감이 미국인 안과 의사 피터 파커가 광저우에서 의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했지만, 정작 유럽의 의료 기술을 중국에 들여오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교육은 과거 시험을 위한 공매 윤리와 사서오경에 함몰되어 있었습니다.

중국 최초의 근대화 고등 교육 기관인 경사대학당을 예로 보겠습니다.

1898년 무술변법 시기에 설립된 이 학교가 개혁이 실패했음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실권을 잡은 자희 태후의 시혜 덕분이었습니다.

청나라 말기, 중국의 진정한 실패는 유럽과 미국의 자본주의 혹은 상업 정신과 맞서, 자본을 개인이 아닌 사회로 회귀시켜 민생 복리를 꾀해야 한다는 인문주의 정신을 출현시키지 못한 데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 더 많은 오병감과 거부들이 있었다 한들 달리 무슨 방법이 있었을까요?

중국이 꼭 유럽, 미국의 길을 걸었어야 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어떤 길이든 시도해야 국가, 사회, 국민의 복지가 향상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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