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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투리시간에 공부하는 한국사] - 10. 고려 신분제도와 전시과제도

by KS지식 - 문화 YouTube 2022.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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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투리시간에 공부하는 한국사] - 10. 고려 신분제도와 전시과제도

고대의 신분제는 귀족-평민-천민으로 세 층이었습니다.
고려의 신분은 법적으로 양인과 천인으로 나뉩니다.
양인은 지배층, 중간층, 피지배층으로 3단계로 구분되고, 천인이 있습니다.
지배층은 왕족-중앙의 고위관리-상급향리로 구성되는데 중앙 고위관리가 되면 그 후손은 쉽게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고, 특권에 기반해서 문벌을 형성합니다.


상급향리는 지방 행정을 장악하고 지방군을 통솔합니다.
이들은 과거 응시에 제한이 없어 과거를 통해 중앙 관리로 진출했고 고려말 신진 사대부는 향리 출신이 많았습니다.
새로운 계층도 생겨난 하급관리는 지배 기구의 말단 행정 실무를 담당하고 서리, 남반, 하급 향리, 하급 장교 등이 해당됩니다.
서리는 관청에서 말단 행정을 담당하는 관리이고 남반은 왕의 시종으로 궁중 실무를 맡습니다.
군반은 중앙군인 2군 6위에 속한 직업 군인입니다.
향리는 지방의 행정실무를 담당하는 사람인데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군, 속현, 특수행정구역인 향, 부곡, 소의 운영은 향리 집단이 주도합니다.
군현에 거주하는 농민이 양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들을 백정이라 불립니다.
도살업에 종사하는 백정은 조선시대 백정으로 고려시대 백정과는 다릅니다.
백정이 중심이 되어 자발적으로 결성한 향도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향도는 고려 전기에는 군현을 아우르는 큰 규모로 사원 조성, 매향 등 불교신앙 활동을 했습니다.
고려 후기에는 규모가 줄어 마을 제사나 노역, 상장례 등 공동체 생활을 주도합니다.
태조 왕건이 민생 안정을 위해 만든 구휼제도로 춘대 추납제도인 흑창이 있었고 이는 나중에 의창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국립 의료 기관으로 동서 대비원이 있고, 서민에게 약을 제공하는 혜민국, 질병 치료를 위한 임시기관 구제도감, 재난 구호를 위한 임시 기관인 구급도감이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여성의 지위가 비교적 수평적이었습니다. 딸도 아들과 똑같이 재산을 상속받았고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태조 왕건은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을 세운 공신들에게 역분전을 지급하는데 이는 토지의 소유권이 아니라 수조권을 지급한 것입니다.
광종의 아들인 경종 때 고려 시대 토지 제도의 핵심인 전시가가 시작되며 시정 전시과가 나옵니다.
전시과에 따라 곡식을 재배하는 전지와 땔감을 얻을 수 있는 시지를 분급합니다.
전시과가 시행되었다는 것은 왕권이 안정되고 체제가 정비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정 전시과의 지급 기준에는 전직, 현직, 그리고 특이하게 인품이란 요소가 있습니다.
이는 개국 공신 집안에 너무 적게 줄수 없으니 주관적인 인품을 적용한 것입니다.
퇴직한 관리들에게도 죽을 때까지 토지를 지급했으니 지금의 연금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하지만 세습은 불가합니다.
시정 정시과는 목종 때 수정되어 개정 전시과라고 합니다.
지급기준이 인품요소가 제거되고 전직과 현직으로 제한 됩니다.
문종 때 경정 전시과로 다시 바뀌는데 지급기준이 현직 관리에게만 토지를 제공합니다.
이는 전직 관리들이 죽을 때까지 토지를 반납하지 않다보니 새롭게 관직에 오른 관리가 토지를 지급받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해서 그렇습니다.
고려 중기 이후에는 토지제도가 문란해지면서 전시과 제도가 유명무실해 집니다.
고려말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과전법을 실시하는데 과전법은 조선시대 강의에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고려시대 시비법이 발달하여 휴경지가 감소하고 농업 생산량이 증가합니다.
역사기록에서 소로 농사짓는 방법인 우경법이 처음 등장한 것은 신라 지증왕 때인데 고려시대에 보편화 됩니다.
이앙법이라 불리는 모내기법이 보급되어 보리와 벼를 교대로 심는 이모작이 가능해졌습니다.(남부 지방 일부)
모내기법 등의 농사 기술을 소개하는 책인 <농상집요>가 원에서 고려로 들어오지만 고려의 토양이나 기후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밭농사에서는 보통 2년 3작법으로 행해진 윤작법이 보급되어 지력을 회복하면서 농사를 지어 생산력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고려말 원에 사신으로 갔던 문익점이 목화씨 10여개를 가지고 들어와 한 그루만 살아남았고 그 한그루를 길러 목화를 얻는데 성공합니다.
개경, 서경, 12목에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기구인 상평창이 있습니다.
풍년일 때 곡식을 비싼 값으로 사뒀다가 흉년에 싸게 팔아서 물가를 조절하는 기구입니다.
화폐는 성종때 최초로 건원중보를 발행하고, 숙종 때는 은 덩어리인 은병(활구)과 의천의 건의에 따라 해동통보를 주조합니다.
이 외에도 동국통보와 삼한통보도 주조하여 유통시키려 노력했지만 백정들은 화폐대신 쌀이나 옷감 등을 사용했습니다.

 

10강 고려 신분제도 경제생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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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이 여러분께 도움이 되었다면 아래 영상도 클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상에 더 자세한 내용이 있고 좋아요는 더 좋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UWyKtE_Eq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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