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정부 지원 어떻게? 문제점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위해 정부와 국회에서 저리 대출 제도를 운영 중이죠. 그런데 정부가 책정한 저리 대출 예산 1600억원 가운데 현재까지 대출이 실행된 건 1%가 채 안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고석승 기자가 알아봤습니다.
[기자]
2021년 9월 전세 사기를 당한 차윤미 씨.
확정일자를 받고 전입신고도 했지만 집 주인이 보증금만 받아 챙긴 채 작정하고 연락을 끊은 상황에선 아무 소용 없었습니다.
계약했던 오피스텔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기존 세입자가 점유 중이라 차 씨는 1년 반째 고향 집과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는 중입니다.
[차윤미/전세사기 피해자 :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그래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전세 대출 만기가 코앞이라 급한 불을 끄려면 추가 대출이 필요하지만, 정부가 마련한 저리 대출은 받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조차 되지 않아서입니다.
[차윤미/전세사기 피해자 : 대항력 때문인 거죠. 집을 점유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제가 피해자로 인정조차 되지 않는다는 게 너무 참담하더라고요.]
저리 대출은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되고 총소득 7천만원 이하, 순자산 5억원 이하 등의 조건을 총족해야 가능합니다.
조건을 낮췄다고는 하지만 차 씨처럼 상당수 피해자들은 여전히 기준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주택도시보증공사가 확보한 저리 대출 예산 1600억원의 집행률을 따져봤더니 4월 중순 기준 13억원, 1%도 안됩니다.
대출 신청도 고작 69건 뿐입니다.
피해를 폭넓게 인정하고 대출 기준도 좀 더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맹성규/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국토교통위) : 전세사기 피해자라고 입증이 된다면 현재 각종 규제나 대출 조건 등은 완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전세사기가 전국 곳곳을 뒤흔들고 있다. 인천 미추홀구를 시작으로 화성시 동탄, 서울 은평구, 부산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피해신고 접수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는 자금 여력이 부족한 대학생과 신혼부부 등이 대다수였고 피해 규모는 수백억원에 달한다.
이에 정부는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등 전세사기를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사태를 진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일각에서는 한시특별법 외에도 전세사기를 근본적으로 근절할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거래경험 적은 초년생…전세사기 수렁 빠져
피해자들이 사기를 당한 이유는 간단하다. 부동산 거래 경험이 적기 때문이다. 전세가율(매맷값 대비 전셋값)이 80%를 넘는 깡통전세에 대한 구조적 특징을 몰라 덥석 계약했고 사기행각을 걸러내지 못했다. 다만 지금이 지난 몇 년간 부동산 시장처럼 호황기였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값과 전셋값이 급락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갭투자자들은 자기자본도 부족한데다, 집을 팔아도 임대로 내줘도 이전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부터는 문제가 더 심각해 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전셋값이 크게 올랐던 시기에 계약했던 매물들의 만기 시점이 도래해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토연구원은 '전세 레버리지 리스크 추정과 정책 대응 방안' 보고서에서 주택가격이 20% 하락하면 갭투자 주택 40%에서 전세보증금 미반환 위험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셋값이 급등했던 것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이 시기 빌라 등을 수십, 수백채를 사들이는 이들이 많았다"며 "이전과 달리 지금처럼 집값과 전셋값이 하락하는 시기에는 집을 팔아도 다음 임차인을 구해도 이전 세입자의 보증금을 맞춰주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선매수권 등 대책 쏟아낸 정부…근절엔 '역부족' 지적도
정부도 손을 놓고만 있진 않다. 지난달에는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피해자 구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특별법은 공포 후 즉시 시행되며, 시행 후 2년간 유효하다.
요건만 충족하면 전세 피해자에게는 우선매수권이 부여된다. 우선매수권으로 거주 주택을 매입하거나 경락을 원하지 않으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권리를 넘긴 뒤 공공임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긴급자금 및 복지지원도 받게 된다. 경‧공매 낙찰 시 금융‧세제 지원도 제공한다.
이보다 앞서선 근절 대책도 마련했다. 은행이 주택담보대출 심사 시 확정일자 확인 후 대출을 진행하는 사업을 확대(4월)하고, 중개사 범용 계약서에 대항력 확보 전에 근저당 설정 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특약도 반영하기로 했다. 공인중개사가 전세사기에 연루되면 퇴출한다.
지난 1일부터는 전셋값이 매매가의 90% 아래인 주택에 사는 세입자만 전세보증금반환보증(전세보증)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전세가율이 높은 깡통전세도 보증보험이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됐던 사례를 막기 위해서다.
다만 전문가들은 전세사기 근절을 위해선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전세사기 근절방안들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며 "세금체납 등을 계약여부와는 무관하게 언제든 누구나 집주인 동의 없이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지금보다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대사업자 육성에 대한 목소리도 나온다. 김효선 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이런 사건이 벌어지기 전 공공임대주택·기업형임대주택 공급 활성화도 필요하다"며 "충분한 공급을 통한 주거안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설명도 있다. 소득 수준을 고려하지 않았던 무분별한 전세자금대출이 지금의 사태를 키운 만큼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처럼 전세보증금도 집값의 일정 부분만 받을 수 있도록 캡(상한선)을 두는 방식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전세도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대출 받는 대출의 일종이니까 매매가 대비 70% 까지만 보증금을 받도록 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며 "나머지 부분은 월세로 받도록 하면 갭투자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선순위가 있는 주택은 전세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집값의 일정 부분만 보증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캡을 씌우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고개 든 '전세 폐지론'…극단적 처방 반대 의견도
전세제도 폐지론도 고개를 든다. 전세제도가 지속되는 한 언제든지 다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월세로의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주장도 일리는 있다. 월세가 일반적인 외국과 달리 국내에만 존재하는 방식으로 시장의 변동성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번 'ㅇㅇ왕' 전세사기 사건도 이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 무리하게 집을 수십, 수백채를 사들였으나 기대와 달리 집값이 하락하며 전셋값 역시 덩달아 떨어지자 보증금 돌려막기도 불가능해진 것이다.
다만 전세 폐지는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 임대에서 매매로 이어지는 주거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대안 없는 폐지는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민들의 주거비용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사안 중 하나다.
고준석 대표는 "전세가 주거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고, 민법 상 전세권이라는 물권제도가 있는 만큼 폐지가 불가능하기도 하고 할 필요도 없다"고 역설했다.
HUG 보증보험사고 통계를 분석한 김진유 교수는 최근 폭증하는 전세사고의 원인을 ‘깡통전세’에서 찾습니다. 통상 집값 대비 전셋값의 비율(전세가율)이 80%를 넘어가면 ‘깡통전세’라고 부르는데요, 전세 보증금이 과도하게 높아 임차인이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높은 주택을 칭하는 말이에요.
김 교수는 “전세보증금이 매매가에 육박하거나 오히려 초과하는 깡통전세가 많은 지역에서 전세보증사고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면서 “상당수는 고의적 전세사기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합니다.
깡통전세와 전세사기는 함께 갑니다. 김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전세 보증금 미반환사고는 전세가율과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은 주로 연립·다세대 주택 거래 비용이 높은 지역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최근 대규모 전세사기가 연달아 터져나온 서울 강서구와 인천 미추홀구는 깡통전세 거래량이 전국에서 손에 꼽히게 많은 것으로 집계된 바 있죠.
깡통전세가 횡행하는 환경에서는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고’뿐만 아니라 기망의 고의가 개입된 전세‘사기’도 함께 늘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분양대행업자와 바지 임대인, 부동산중개업자까지 공모하는 최근의 조직적인 전세사기는 전셋값을 집값보다 높은 수준으로 조작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어요. 신축 빌라 세입자를 속여 분양대금보다 높은 전세 보증금을 받음으로써 임대인은 자신의 자본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서도 수십, 수백채의 빌라를 소유할 수 있게 되죠.
사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전세사기’는 부동산중개업자가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를 속이고 이중계약 하는 방식의 범죄를 주로 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같은 집을 두고 임대인에게는 월세 계약서를, 임차인에게는 전세 계약서를 들이밀어 임차인의 전세 보증금을 들고 ‘튀는’ 방법이 대표적이었죠.
“중개업자와 짜고 대출 받아 튀는 집주인”으로 대표되는 ‘신종 전세 사기 수법이 등장한 것은 2013년 즈음이었어요. 당시에도 지금처럼 집값이 떨어지면서 ’깡통전세‘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던 때였고요. 전세금 반환보증이 처음 시행된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3. 갭 투자의 ‘고의’를 찾아서
그럼 지금 이 시점에 깡통전세가 이렇게까지 많아진 원인은 무엇일까요? 지난 몇년 간 거칠게 휘몰아쳤던 갭 투자 광풍의 여파입니다.
갭 투자는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이 적은 집을 골라 전세를 끼고 매입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를 말합니다. 집값과 전셋값이 함께 폭등하고 금리는 0%대에 머물렀던 2020년 즈음부터 2022년까지, ‘영끌’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수백채의 주택을 갭 투자로 구매했다는 이들의 성공신화가 어디서나 쩌렁쩌렁 울려퍼졌죠. 자기 자본이 거의, 아니 아예 없이도 집주인이 되고 임대인이 될 수 있었던 시기입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에서 2020년부터 2년8개월 간 ‘주택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하고 집을 구매한 개인 약 150만명을 조사한 결과, 그중 약 12만명이 집값 대비 전세 보증금이 80%가 넘는 깡통전세를 구매한 ‘갭 투자자’였다고 해요. 전체 43만명의 임대 목적 주택 구매자 중 3분의 1 가까이가 집값의 20%도 되지 않는 자본만 들여 집을 사는 데 성공했다는 거죠.
다른 통계도 있습니다. 지난 2월 국토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9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세입자 보증금을 승계하는 방식, 즉 갭 투자 방식으로 매입된 주택이 73만3000가구에 달한다고 해요.
문제는 집값 하락기에 접어든 2023년 현재입니다. 금리가 상승하고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고 있는 지금, 73만에 달하는 갭 투자 가구 중 28%는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반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어요. 숫자로 보면 무려 20만9000가구에 달하고요.
이들 갭 투자자들에게 임차인의 보증금을 가로채려는 사기의 ‘고의’가 있든 없든, 중요한 건 이들의 존재 자체가 이미 ‘전세 사기’ 혹은 ‘전세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심각한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는 거예요.
사실 이 위험 요소는 ‘갭 투자’라는 투자 방식에 이미 내재돼 있는 것이기도 하죠. 국토연구원 연구팀은 “갭 투자가 세입자 보증금을 레버리지 삼아 시세차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위험한 투자 방식임에도 ‘이익은 임대인 혼자, 손해는 임대인과 임차인이 같이’ 보는 구조”라고 지적해요.
‘갭 투자’의 구조에는 애초부터 ‘임차인의 피해 가능성’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알면서도 여태 묵인해 왔던 것일까요? 집값 상승기에는 ‘쏠쏠한 투자’지만 집값 하락기에는 임차인의 보증금까지 앗아가는 ‘위험한 투기’로 변모할 수 있는 갭 투자의 두 얼굴을, 적어도 정책 전문가와 입안자라면 이미 훤히 알고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임대인의 투자 혹은 투기의 위험을 임차인에게 덮어씌우는 갭 투자가 한동안 ‘성공신화’의 서사로 자랑스레 회자됐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습니다. 갭 투자의 폭증을 묵인하고 방조한 정부에겐 도대체 어떤 ‘고의’가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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