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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문화

명화 이해하기(4) 밀레 - 이삭 줍는 여인들

by KS지식 - 문화 YouTube 2022.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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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여가는 보리 짚단이 다가올 추운 겨울을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풍요의 상징이라면, 왜 “추수 Moisson”라고 부르지 않고, 굳이 “이삭 줍는 여인들 Glaneuses”이라고 제목을 붙였을까?

1857년 파리에서 가까운 바르비죵 근처의 ‘샤이 Chailly’ 평야의 풍경을 담은 것으로, 일꾼들이 추수에 열중해 있으며, 뒷 배경에는 추수된 보리들을 낫가리에 쌓고 있는 일꾼들의 모습,  앞쪽에는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는 여인들을 묘사하였다. 묵묵히 일하고 있는 세 명의 여인은 아름답지도 우아하지도 않다. 주어진 일에 열중하고 있을뿐…. 세 여인이 땅을 향해 몸을 구부린 채 추수하는 농부들이 흘린 보리 이삭을 줍고 있는 여인들의 뒤로는 마치 땅이 지평선을 향해 솟아오르는 듯 펼쳐져 있다

 

 

이들의 왼쪽으로는 엄청난 크기의 보리 짚단들이 눈에 띈다. 수평선을 따라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마을의 모습이 뒤 배경에 나타나고, 그 앞에 말을 탄 남자가 보이는데 일꾼들을 감독하고 있는 농장의 주인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의지로 지평선을 뚫고 우뚝 솟아 있다. 그런데, 앞쪽의 세 여인은 이상하게도 고독해 보인다. 농부들과 여인들간의 거리도 무척이나 멀어 보이고, 아무도 이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이 여인들은 보리 추수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한 당시 사회의 가난한 소외자들을 묘사한 것이라고.

 

첫 번째 여인은 보리 이삭을 줍기 위해 팔을 뻗치고 있고, 두 번째 여인은 보리 이삭을 주워담고 있으며, 세 번째 여인은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고 있는 장면은 결국 보리 이삭을 줍는 일련의 연속 동작을 각자 한 동작씩 연출하고 있는 것으로 일종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농장주가 불쌍히 여겨 추수하는 농부들이 땅바닥에 흘린 보리 이삭을 줍도록 허락한, 소위 보리 이삭을 줍는 여인들인 것이다. 운명처럼 짓누르는 수평선의 무게에 힘겹게 순종하며 살아가는 소외된 자들….

‘밀레’는 세 여인을 한 무리로 묶어 구성하였는데, 저 부조를 막 벗어나는 듯한 여인들의 모습과, 마치 종교적 의식을 거행하는 듯 느리면서도 우아한 움직임을 전체적으로 단순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여인들이 하나의 보리 이삭이라도 더 줍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굽히고 일으키는, 연속적이고도 고된 동작을 보고 있는 듯하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라는 작품은 성경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고 한다. 세 명의 여인이 가을 들판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풍경이다. 유대인들은 이집트를 탈출한 뒤 사울·다윗·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삼왕시대를 갖기 전, 왕 없이 신이 직접 다스리는 사사기 시대(BC1390~BC1044)를 맞는다. 이 사사기 시대 때 유다지파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부인 나오미와 아들 둘을 데리고 가뭄을 피해 저주의 땅인 모압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모압 여인을 며느리로 맞아 살다가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죽는다. 그러자 나오미는 다시 고향인 이스라엘로 돌아온다. 이 때 나오미는 모압을 출발하기 전 며느리 둘에게 각자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작은 며느리인 오르바는 돌아갔으나, 큰 며느리인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나선다.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는 같은 유다지파 집안인 보아스의 밭에서 며느리와 함께 둘이서 이삭을 주워 생계를 유지한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며느리인 룻은 보아스와 결혼한다. 둘 사이에서 오벳이 태어난다. 오벳에게서 이새, 그리고 이새에게서 다윗이 태어난다. 다윗은 예수의 조상이다. 

성경 구약에서는 추수할 때 떨어진 이삭은 줍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가난한 자와 외국인이 가져가 먹고 살 수 있도록 남겨놓아야 한다는 것이다(레위기19:9-10). 동양 고대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중국 주왕조(BC 11세기 무렵~BC221) 때 쓰여진 《시경》의 ‘떨어진 벼이삭이 있으니 이것은 남편 잃은 과부들의 차지다’(此有滯穗 伊寡婦之利)라는 내용이다.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이야기했다. 어린 아이가 우물물에 빠지려 할 때 사람들이 놀라서 뛰어나가 아이를 구하는 행위는 자기의 잇속을 생각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나 궁지에 몰린 사람을 보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맹자 성선설의 근거가 되는 사단(四端) 중 하나인 측은지심이다.


추수 때 떨어진 이삭은 가난한 자의 몫으로 남겨둬

종교의 본질은 사실 도덕이다. 정신과 행위에서 아직 동물과 인간의 분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 종교는 인간을 동물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등장한다. 그때 강조된 것이 바로 도덕이다. 따라서 모든 종교의 출발은 도덕이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6바라밀을 들고 있다. 그리고 6바라밀 중 첫째가 바로 보시(布施)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베풀라는 것이다. 

이슬람교 신자들은 5행을 실천한다. 신앙고백(샤하다), 예배(쌀라), 단식(라마단), 순례(핫지),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의무적으로 기부하는 쟈카트이다. ‘쟈카트’의 원래 의미는 ‘정화(Purification)’다. 바로 자신의 정화를 위해 물질을 내놓는 것이다. 

성경 구약에서는 희년을 두고 있다. 땅은 원래 신의 것이고, 신이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것이니 사람들이 공평하게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 50년 단위로 희년이라는 것을 두어 그때가 되면 그 동안 소유권이 이전되었든 담보가 설정되었든 그 땅을 원래의 주인에게 아무 권리 제한 없이 되돌려주도록 한다. 농사가 경제활동의 전부였던 고대 시대, 희년 제도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땅이 있어 그 땅을 부쳐 먹도록 한 신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배려였다. 

사서 중 하나인 《대학》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닐 정도의 집안에서는 닭이나 돼지를 키우지 아니하고, 한 여름에 얼음을 사용할 정도의 고관대작 집안에서는 소나 양을 기르지 않는다’(畜馬乘不察於鷄豚 伐氷之家不畜牛羊)이라는 내용이다. 바로 아랫사람들 또는 일반 서민들도 먹고 살 수 있도록, 윗사람들 또는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배려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의 모티프인 성경 스토리에서 여인의 수는 원래 셋이 아닌 둘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림 속 숨겨진 메시지가 중요하다. 측은지심이다.​ 

출처 :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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