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풍 vs 중국몽>
[마르코폴로 - 동인도 회사]
1296년 이탈리아 상인 마르코 폴로는 오랜 중국 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베네치아로 돌아갑니다.
이후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습니다.
제노바-베네치아 전쟁에 참전했다가 제노바의 포로로 감옥에 갇힙니다.
그곳에서 이탈리아 피사 출신의 정열적인 낭만주의 작가 루스티켈로를 만나는데, 그가 바로 마르코 폴로에게 들은 여행담을 <동방경문록>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어 출판한 장본인입니다.
이 책은 유럽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무역 대상지를 찾던 유럽인에게 마르코 폴로가 말한 번화하고 인구가 조밀하며 안정되고 질서가 잡힌 중국은 커다란 유혹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중국으로 가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200년이 흐른 뒤에도 서양의 여러 나라는 여전히 동방에서 새로운 무역 대상을 찾았습니다.
모험가들은 동인도에 닻을 내리고 교역하는 꿈을 꾸었고, 각국 왕실도 탐험을 떠나는 모험가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1451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한때 마르코 폴로가 억류됐던 도시 제노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40년 뒤인 1491년에 인도로 가는 새 항로를 찾고자 항해를 떠났습니다.
동방 무역을 열렬히 원하던 스페인 국왕은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대서양을 건넌 콜럼버스는 1492년 10월 12일 새벽 2시, 미국 플로리다주 동남 방향 바하마 제도의 작은 섬 산살바도르에 도착했습니다.
선원들은 섬에서 독특한 나무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구사하는 원주민을 보았는데, 과거 동방의 역사를 기술했던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나 마르코 폴로도 언급한 적 없는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이곳이 중국일까? 아니라면 얼마나 더 가야 할까?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었습니다.
콜럼버스는 섬의 원주민이 인도 사람이며 이들이 자신을 일본이나 중국에 데려다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항해를 계속한 콜럼버스는 바하마 제도를 지나 현재의 쿠바 북부에 도착했습니다.
통역을 대동하고 부족 추장을 만난 콜럼버스는 처음에는 그를 중국 황제로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섬에는 마르코 폴로가 베이징에서 쿠빌라이를 알현하면서 보았던 웅장함과 화려함이 없었습니다.
콜럼버스는 곧 그곳이 중국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그는 1493년 3월 15일 스페인 항구로 돌아오자 영웅이 됐고 극진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빠르게 이지역에 식민지를 확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콜럼버스는 자신이 발견한 동인도가 인도, 일본은 물론 마르코폴로가 묘사했던 중국이 아니어서 실망했습니다.
스페인 국왕이 꿈꾸던 동방으로 가는 새로운 해상 교역로 개척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당시 스페인은 새로운 식민지 건설을 통해 자원과 시장을 확보하고 노예 무역을 활성화하고자 했습니다.
신항로 개척도 이러한 의도에서 추진됐습니다.
5년 뒤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쿠 다가마가 인도 코지코드에 도착했습니다.
유럽 각국이 그 뒤를 이었고, 마침내 중국을 찾았습니다.
아시아 교역과 식민지 확보라는 성과를 눈앞에 둔 순간이었습니다.
17세기 전반 유럽 각국은 아시아 무역을 담당하는 동인도 회사를 세웠습니다.
동인도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품어온 중국을 향한 욕망의 표현이었습니다.
1600년 가장 먼저 영국이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고 대서양, 인도양 무역을 시작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 회사에 인도, 동아시아 무역 독점권을 하사했습니다.
뒤이어 네덜란드가 1602년에 동인도 회사와 1621년에 서인도 회사를 각각 세웠습니다.
프랑스는 1664년 동인도 회사를, 스웨덴은 1731년 동인도 회사를 세웠습니다.
이후 유럽과 이들이 경영하는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동양 상품 소비가 급증하면서 중국풍이라는 새로운 유행이 시작됐습니다.
유럽의 왕실과 귀족들은 동인도 회사를 통해 들여온 차, 비단, 자기, 칠기 등을 통해 멀고 먼 지역 동방을 이해했습니다.
새로운 지식으로 무장한 이들은 중개 무역과 이와 연결된 자본으로 전 세계 식민지를 긴밀하게 결합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이 동인도 회사를 출범시키던 시기, 중국은 청나라 전기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사회는 안정적이어서, 1680년대 강희제가 해금령을 풀자 유럽 상인들이 광저우, 아오먼 등 화난 일대에 물밀듯이 모여들어 대외 무역이 번성했습니다.
1687년 전후에 광둥 판위 출신 학자 굴대균은 광주죽지사에서 유럽 상인과 거래하던 십상행의 번화한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서양 배들은 앞다투어 십상행 상점을 찾고
사방의 문이 동서양 바다를 향해 열렸네.
오사, 팔사 같은 광저우 비단이 잘 팔리니 십상행에 은전이 가득하구나
청나라 중후반까지 광저우 일대 무역은 번성했습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묘사한 바로 그 모습이었습니다.
유럽 동인도 회사 상선이 줄지어 광저우 입구 주장강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은 중국 비단, 칠기, 자기와 차, 동남아의 향료 등을 유럽 대륙과 식민지로 싣고 갔습니다.
유럽, 아프리카 식민지, 아메리카 식민지와 중국, 일본 및 인도양 국가들이 원양 무역을 통해 긴밀하게 연결되었습니다.
이 시기 세계는 하나의 무역 시스템 속에서 발전했습니다.
당시 유럽에는 칠기와 자기 등 정교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동인도 회사들이 들여온 이들 중국 상품은 유럽 사치품 시장에서 크게 유행했습니다.
막대한 이윤을 얻은 회사들은 중국 무역에 더욱 집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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