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력 4위 이라크를 생방송으로 박살낸 미국 - 걸프전]
<황금 or 석유>
1991년 1월 17일 새벽 2시 45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 폭발음이 울려 퍼집니다.
공습의 시작과 함께 조지 부시 대통령은 걸프 전쟁 시작을 알리는 연설을 했습니다.
CNN의 종군기자 피터 아넷은 공습을 시작한 직후 바그다드 현지에서 17시간 넘도록 전쟁 현장을 생생하게 보도했습니다.
덕분에 걸프 전쟁은 인류 역사상 TV로 생중계된 최초의 전쟁으로도 유명해졌습니다.
전 세계 10억 인구는 안방에서 마치 한 편의 영화나 비디오 게임을 보듯 실제 전쟁 상황을 생생하게 지켜본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걸프 전쟁은 중동의 스탈린이라 불린 이라크의 독재자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시작합니다.
이후 미국을 주축으로 총 39개국이 참여한 큰 전쟁으로 번 집니다.
검은 황금이라 불리는 석유가 있었는데 석유를 향한 욕망은 걸프 전쟁에서만 20만 명의 희생자를 만들어냈습니다.
[세계 최강국이된 미국?]
석유가 검은 황금이라 불린 계기는 영국이 제공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무렵 영국 해군이 함선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꾼 것입니다.
이후 석유 확보는 전쟁의 승리를 좌우하는 핵심 조건이 되었습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까지 겪으면서 전 세계는 석유가 곧 국가의 힘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나아가 전쟁뿐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자원이 되면서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다만 당시 중동은 아직 석유를 탐사하거나 채굴할 기술이 미흡했습니다.
그러자 기술을 보유한 서구 열강들이 중동 국가를 대신해 석유 개발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중동의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승자는 1991년 냉전 시대가 막을 내리고 세계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동에 진출해 유전 개발을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27년 키르쿠크에서 석유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1928년 레드 라인 협정에 참가하면서부터입니다.
미국이 중동 석유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던 1930년대 말, 앞으로 미국에서 새로운 유전이 발견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미국의 석유 지질학자들이 팀을 이뤄 중동으로 건너가 조사를 했고, 페르시아만 지역의 석유는 역사상 단연 최고의 상품임을 확인했습니다.
이 무렵부터 미국의 관심이 중동을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영국이 중동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때였습니다.
미국이 영국을 제치고 석유 전쟁의 승자가 되는 데에는 중요한 사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제2차 세계대전 종식 1년 전인 1944년에 첫 번째 사건이 벌어집니다.
미국이 중동 석유에 자꾸만 관심을 보이며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자 영국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미국의 적극적인 중동 진출에 자국의 입지가 줄어들까 봐 불안한 한편, 중동을 노리는 소련의 위협을 방어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
가 유전 개발에 필요한 자본도 부족했기 때문에 미국의 도움도 필요했습니다.
그리하여 주미 영국대사인 에드워드 핼리팩스는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접견을 요청합니다.
그 자리에서 루스벨트는 종이에 중동 지도를 그리며 역사적으로 회자되는 제안을 하나합니다.
이란 석유는 영국이 갖고,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석유는 공유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석유는 미국이 갖는다.
루스벨트가 중동의 정세를 정리하며 미국과 영국의 이권을 나눠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를 미국이 가져간다는 일방적인 통보에 불만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중 1945년 미국이 영국을 제치고 중동 석유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었던 두 번째 결정적 사건이 일어납니다.
미국이 영국, 소련의 정상들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를 논의한 얄타회담 직후인 1945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미국 군함 퀸시호에서 은밀한 회담이 열립니다.
미국으로 돌아가던 루스벨트가 중동에 들러 홍해에서 비밀리에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을 만난 것입니다.
루스벨트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전통적 예법과 카리스마에 호감을 표시하며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국왕에게 특별한 선물도 줍니다.
소아마비를 앓았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휠체어를 타고 다녔는데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또한 내전 중 입은 사고로 다리가 불편했던 것입니다.
국왕이 휠체어를 타고 자유자재로 다니는 루스벨트를 부러워하자 똑같은 휠체어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루스벨트에게 형제애를 느꼈다고 할 정도로 회담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진심을 담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외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석유 개발 특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대가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안보를 보장해주기로 합니다.
회담이 끝난 뒤에도 아랍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며 따뜻한 마음을 전한 루스벨트는 안타깝게도 두 달 뒤 지병으로 사망 했습니다.
미국이 여러 중동 국가 중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를 노린 이유는 당시 원유 매장량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하루 석유 사용량은 270만~290만 배럴입니다.
장충체육관을 꽉 채울 정도의 양입니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에는 하루에 1천만 배럴을 뽑아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무슬림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강한 국가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풍부한 석유 매장량과 종교적인 권위까지 갖춘 막강한 나라였습니다.
미국은 이런 사우디아라비아의 가치를 알기에 양국의 관계를 굳건히 하고자 공을 들인 것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마음을 산 루스벨트 덕분에 미국은 중동의 강자로 부상합니다.
반면 중동에서 영국의 입지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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