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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무역4

곽량의 죽음과 테라노바의 죽음 [무역제재와 테라노바의 죽음] 다음 날 중국 측은 미국 선박에 엄격한 무역제재를 내렸습니다. 월해관 감독관 아이방아는 항구에 있는 모든 미국 선박을 봉쇄했습니다. 무역은 중지되고 에밀리호는 발이 묶였습니다. 이는 중국 측이 외국 상인에게 취할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조치였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고육책이기도 했습니다. 미국 측은 여전히 중국 측과 심리에 대해 나름의 논리를 펼치며 버텼지만 3주일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손해는 막심했고 이러다가 투자자들이 본전도 못 건질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배를 수색당해 아편이라도 발각되는 날엔 살인 사건을 넘어 문제가 커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습니다. 10월 24일 중국 병사들은 에밀리호에서 테라노바를 압송하여 광저우성에 있는 한 무역상 건물에 구금하고 면회를.. 2022. 12. 31.
에밀리호 선상의 최종판결은? [에밀리호 선상의 판결] 10월 6일 오전 8시, 판위현 지현 왕운임이 탄 배가 호위를 받으며 도착했습니다. 코플랜드 선장이 통역을 대동하고 지현의 배에 올라 환영을 표했습니다. 지현은 중국 법에 따라 테라노바의 신분을 확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선장은 중국 측이 강제로 테라노바를 끌고 가 임의로 처리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으나 오병감의 보증하에 동의했습니다. 중국 측은 테라노바에게 쇠고랑을 채우려 했습니다. 선장은 미국 선박에서 심리 중이니 유죄 확정 전까지 기다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테라노바는 심리에 순순히 협조하기로 했습니다. 왕지현은 수하 관리들, 상인, 목격자들과 같이 에밀리호에 올랐습니다. 배 위에는 40여 명의 미국인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000여 명의 백성과 중국 병선들이 에밀리호를 둘.. 2022. 12. 30.
곽량의 죽음에 범인은 누구였을까? 재판진행은? [범인은 누구?] 사건 발생 3일 후 남편 곽소제는 판위현 아문에 고발장을 제출했습니다. 에밀리호 사건은 광저우 주재 미국 영사 벤저민 와일리에게도 보고되었습니다. 영사는 더 이상 사건이 확대되지 않도록 십상행 오병감에게 중재를 부탁하는 한편, 먼저 선박 회사가 피해자에게 합의금으로 1만 5,000달러를 지불할 것을 제의했습니다. 이틀 뒤 윌리엄 코플랜드 선장은 영사를 방문해서 중국 측 일처리에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또한 테라노바는 죄가 없으니 공개 수사로 결백을 밝혀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로써 영사가 회사와 사망자 가족 간 진행하려던 중재안은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당시 중국과 미국 사이에는 어떤 외교 조약도 없었습니다.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지 않았기에 와일리는 비공식 외교관을 ㅗ활동했습니다. 행정.. 2022. 12. 29.
곽량의 죽음은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갑판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재앙] 1821년 9월 23일 햇빛 찬란하던 광저우성 외곽 주장강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광저우의 여성 곽량은 작은 배에 딸 곽아두를 싣고 서양 선박 주변에서 과일을 팔았습니다. 매일 주장강에서는 외국에서 온 오랑캐 선박들의 오병감의 이화행 등 십상행과 거래를 했습니다. 현지 주민들은 배에서 내릴 수 없는 선원들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했습니다. 곽량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갈모를 쓰고 간단한 영어로 선원들에게 과일을 팔았습니다. 남편 곽소제는 하구 부근에서 아내와 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미국의 에밀리호는 볼티모어 선박으로 터키 아편을 싣고 왔습니다. 선주는 존 도넬, 선장은 윌리엄 코플랜드였습니다. 아편은 거의 다 팔았고 해적의 습격이나 세.. 2022.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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