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신동 신유빈(19·대한항공)은 첫 국가대표에 승선한 2019년부터 바로 국제대회에서 띠동갑 선배 전지희(31·미래에셋증권)와 여자 복식 호흡을 맞췄다. 전지희는 “당시 중학생이었던 유빈이의 남다른 실력에 깜짝 놀랐다. ‘유빈이를 위해 내가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4년을 동고동락했다.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 등 굵직한 대회에 함께 나선 둘은 경기를 앞두곤 숙소에서 탁구 영상을 돌려보며 경기 운영 방법을 논했다. 그리고 늘 승리의 공(功)은 상대에게, 패배의 과(過)는 자신에게 돌렸다.
“나 때문에 진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하며 잘못을 인정하는데 머뭇거림이 없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서로 신뢰를 쌓았고 한국 탁구가 자랑하는 최강 조합으로 거듭났다.
신유빈-전지희 조(세계 랭킹 1위)가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복식 정상에 올랐다. 신유빈-전지희는 2일 중국 항저우 궁수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북한 차수영(23)-박수경(21) 조(랭킹 없음)와 벌인 대회 결승 남북전에서 4대1(11-6 11-4 10-12 12-10 11-3)로 승리했다. 한국과 북한이 아시안게임 여자 탁구 결승에서 맞붙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코로나 기간을 지나 약 3년 만에 탁구 국제대회에 나선 북한은 대만 등을 잡고 결승에 오르는 이변을 썼다. 북한은 6000여 중국 팬들의 일방적 응원도 받았으나 한국이 한수 위였다.
2일 중국 항저우 궁수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탁구 여자 복식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신유빈(오른쪽)-전지희가 금메달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탁구가 21년 만에 거둔 쾌거다. 한국은 1986 서울 아시안게임부터 2002 부산 대회까지 5회 연속 탁구 금메달을 따냈다. 하지만 이후 늘 은·동에 머물며 금맥이 끊겼다.
특히 여자 복식은 2002 대회 이은실-석은미 조의 금메달 이후 입상에 전부 실패했다. 그만큼 이번 대회 신유빈-전지희 조에 거는 기대는 컸다.
둘은 지난 5월 남아공 더반 세계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강호 쑨잉사(23)-왕만위(24) 조(중국)를 꺾는 이변을 일으키고 결승에 진출, 최종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단·복식을 통틀어 세계선수권 은메달 이상 성적을 낸 건 1993년 스웨덴 예테보리 대회 현정화(단식 우승) 이후 30년 만이었다. 그리고 6월 복식 랭킹 1위로 올라섰다.
이번 대회에서도 순항했다. 태국(32강), 북한(16강), 대만(8강), 일본(4강) 조를 차례로 눌렀다. 준결승에서 인도를 꺾고 올라온 북한 조와의 결승을 앞두고 둘은 “(동메달에서) 메달 색을 바꿔서 좋다”면서도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은 국제대회에 나서지 않는 동안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이번 대회에선 2000년 이후 출생 어린 선수들이 나섰는데 여자 단체전에서 상위 랭커가 버틴 대만을 잡는 등 이변을 연출했다. 하지만 국제무대에서 숱한 경험을 쌓은 신유빈-전지희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2일 중국 항저우 궁수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탁구 복식 결승 한국-북한 경기 시작 전 전지희, 신유빈이 북한 선수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신유빈은 처음으로 나선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포함, 출전 4종목 모두 입상했다. 여자 단식, 여자 단체전, 혼합 복식에선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부상을 딛고 거둔 성과이기에 더 의미가 크다. 2년 전 오른손 통증이 극심해 병원을 찾았다가 피로골절 진단을 받았다. 핀을 박고 뼛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작년 9월까지 받았다. ‘탁구를 못 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울기도 했다.
하지만 회복을 기원하는 팬 응원에 마음을 다잡았다. 오뚝이처럼 일어나 월드테이블테니스(WTT) 컨텐더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기량을 끌어올렸고, 결국 아시안게임 정상에 올랐다.
신유빈은 ‘국민 동생’이라고도 불린다. 5살에 TV 예능에 나와 천재적인 실력을 뽐낸 후, 병아리 우는 소리 같은 기합에 ‘삐약이’ 별명이 붙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신유빈은 “이런 응원은 더 힘을 내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2일 중국 항저우 궁수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탁구 여자 복식 결승전에서 한국 신유빈-전지희가 북한 차수영-박수경을 상대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확정 짓고 기뻐하고 있다./김동환 기자
전지희는 귀화 선수다. 중국 허베이성 랑팡 출신으로 중국 청소년 대표를 거쳤다. 하지만 ‘탁구 대국’ 중국에서의 국가대표 벽은 너무 높았다. 탁구를 계속 하고 싶던 전지희는 2008년 한국으로 건너와 3년 뒤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지희(知希)라는 이름은 ‘희망을 알다’라는 뜻이다. 그렇게 전지희는 한국에서 희망을 키웠다. 2017년 유니버시아드대회 3관왕에 오르는 등 꿈에 그리던 국제무대 성과를 냈다. 그는 “한국인이 된 이후 치르는 한 경기, 한 경기가 너무나 소중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귀화 후 아시안게임엔 두 차례 나서 동메달 3개(2014 1개, 2018 2개)를 수확했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노골드’ 한을 풀었다.
전지희는 “시합장으로 갈 때부터 유빈이와 ‘옆에 있어서 좋다’ ‘우리 믿고 하자’고 말한다”고 했다. 신유빈도 “언니를 믿고 따른다”고 주저 없이 얘기한다. 두 선수의 단단한 신뢰는 한국 탁구사(史)를 바꿔놓았다.
2일 중국 항저우 궁수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탁구 복식 결승 한국 대 북한 경기. 북한에 승리를 거두고 금메달을 획득한 신유빈(오른쪽)과 전지희가 시상식 후 금메달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 탁구는 금메달 1개(여자 복식), 은메달 2개(남자 단체전, 남자 복식 장우진-임종훈), 동메달 5개(여자 단식 신유빈, 남자 단식 장우진, 여자 단체전, 혼성 복식 장우진-전지희·임종훈-신유빈)로 이번 대회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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