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술문화

명화 이해하기(16) 베르메르 -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by KS지식 - 문화 YouTube 2022. 4. 23.
반응형
SMALL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의 1665년 작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이 작품을 두고 누군가는 “회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소녀”라고 한다. 또 누군가는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한다. 일본의 한 미술상은 이 작품을 2000억 원 정도로 평가하기도 했다. 

베르메르 그림은 대부분 일상의 순간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포착했다. 그 일상을 투명한 빛이 감싸 안고 있다. 그의 그림들 곳곳엔 고요와 적막이 흐른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자. 라피스 라줄리(선명한 청색 보석)의 색조가 진하게 묻어나는 푸른 터번, 노란색 상의, 반짝이는 진주 귀고리, 베르메르 특유의 빛의 표현…. 

이 그림은 은근히 동적(動的)이다. 베르메르는 얼굴을 돌린 모습을 스냅사진 촬영하듯 순간적으로 포착했다. 화가의 감각이 빼어나다. 이러한 포즈는 이 작품의 주요 덕목이다. 그렇기에 현대적이고 세련됐다. 17세기에 이렇게 동적인 포즈를 포착해 인물화로 구현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소녀는 얼굴을 돌려 뒤를 바라본다. 맑고 커다란 눈망울에 살짝 벌린 입. 다소 우울한 눈빛에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무척 궁금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 수는 없다. 베르메르는 이에 대한 단서를 전혀 남겨놓지 않았다. 

나치를 조롱한 세기의 僞作

그리 존재감이 없던 베르메르가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19세기 후반 연구가 진행되면서부터다. 이에 힘입어 20세기 베르메르의 그림들이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다. 1930년대엔 특히 더 화제였다. 베르메르의 새로운 작품들이 잇따라 발굴됐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유럽전쟁 직후인 1945년 5월, 연합군은 오스트리아 아우스제 소금광산에서 나치가 숨겨둔 미술품을 대량 발견했다. 나치 2인자 헤르만 괴링의 수집품도 있었고, 거기서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라는 작품이 나왔다. 작품엔 요하네스 베르메르란 서명이 들어 있었다. 수집 경위를 적어놓은 기록에 따르면, 1942년 괴링이 중개인을 통해 판 메이헤른(1889~1947)이라는 화상 겸 화가로부터 구입한 것이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미술계는 “베르메르의 새로운 작품”이라며 흥분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경찰은 메이헤른을 나치 협력죄로 체포했다. 나치에게 그림을 판 것은 나치에 부역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였다. 경찰은 메이헤른이 베르메르 작품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추궁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메이헤른은 “그 작품은 내가 그렸다”고 실토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메이헤른은 “1930년대 새롭게 발견돼 주목받은 베르메르의 그림은 모두 내가 그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충격적인 발설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놀라운 내용이다 보니 사람들은 메이헤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메이헤른이 나치 협력죄로부터 벗어나려 꾸며낸 말이라고 여겼다. 

사법 당국 또한 메이헤른을 믿지 않았다. 1945년 7월 네덜란드 국립미술관은 한술 더 떠 “진작(眞作)임을 증명할 수 있다”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메이헤른은 답답했다. 메이헤른은 이렇게 주장했다.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는 내가 캔버스의 안료를 벗겨내고 그린 것이다. 그림을 긁어내면 원래 그림이 드러날 것이다.” “그 원래 그림을 내게 판 미술상도 다 알고 있다.” 

메이헤른의 실토가 계속 이어지자 경찰은 현미경 조사를 실시했고 실제로 밑그림 흔적이 드러났다. 메이헤른의 말대로 위작이었다. 그러나 사법 당국과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베르메르를 잃었지만 메이헤른을 발견했다”

이런 상황에서 메이헤른은 자신이 가짜를 그렸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했다. 그는 옥중에서 직접 새로운 위작을 그려 입증하고자 했다. 결국 메이헤른은 2개월 만에 ‘학자들 사이에 앉은 그리스도’란 제목의 그림을 완성했다. 1930년대 새롭게 발굴됐다는 베르메르 그림과 분위기, 색감, 붓 터치 등이 거의 흡사했다. 사법부는 위작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 사람들도 가짜임을 비로소 인정하기 시작했다. 

희대의 위작 사건이었다. 세상은 미술계에 냉소를 쏟아냈다. “우리는 베르메르를 잃었지만 대신 판 메이헤른을 발견했다”라고. 가짜를 제대로 가려내지 못한 미술계를 조롱하는 것이었다. 메이헤른은 나치에 부역한 매국노에서 침략자 독일을 감쪽같이 속여버린 영웅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메이헤른은 사기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나치 협력 혐의는 무죄로 판결 났다. 

위작 사건의 후유증은 만만치 않았다. 메이헤른의 위작을 구입한 사람들은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소장한 작품의 값이 떨어지고, 안목과 자존심에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재판 결과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메이헤른은 왜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까. 사실은 메이헤른도 화가였다. 그는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았다. 미술계는 내 작품을 과소평가했다. 나의 존재를 알리고 미술계와 세상에 복수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메이헤른은 1932년부터 베르메르의 그림을 탐구했다. 작품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 아이템을 찾아내 비평가들의 평가를 참고하면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옛날 캔버스 그림을 찾아내 물감을 벗겨내고 거기 그림을 다시 그렸다. 그렇게 그린 뒤 오븐에 굽고 균열과 흠집을 내고 옛날 분위기로 꾸며 ‘엠마오의 그리스도와 제자들’ ‘엠마오의 저녁 식사’와 같은 제목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자 미술사가와 평론가들은 “베르메르의 그림이 발견됐다. 놀라운 그림이다”라며 극찬했다. 메이헤른이 1935~37년에 그린 ‘엠마오의 저녁 식사’는 1938년 로테르담 보이만스 미술관이 54만 길더에 구입해 지금도 소장하고 있다. 괴링이 부인과 함께 사들인 작품 중 11점도 가짜로 확인됐다. 결과적으로 나치에 부역한 것이 아니라 나치를 제대로 조롱한 셈이 됐다. 이러한 소동을 겪으며 베르메르는 대중의 마음속에 완전하게 각인됐고 ‘우유를 따르는 여인’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등도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출처 : 신동아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