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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만에 끝내는 세계사

[5분]만에 끝내는 기본 세계사 23편 - 나폴레옹 유럽을 지배하다

by KS지식 - 문화 YouTube 2022.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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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만에 끝내는 기본 세계사 23편 - 나폴레옹 유럽을 지배하다

오늘날까지 나폴레옹은 전쟁을 통해 프랑스를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로 만든 독보적인 야전 사령관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전 유럽을 주름잡으며 정복 전쟁을 벌였고 전성시대는 거의 유럽 전체를 지배했습니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나폴레옹을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가 1806년에 프로이센 군대까지 전멸시킴으로써 천 년을 이어온 신성 로마 제국의 역사를 종결시켰을 때 프로이센 왕비 루이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나폴레옹에게는 어떤 좋은 일이나 인간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없다. 그의 끝없는 야망은 오로지 자기 자신과 개인적인 관심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를 보고 경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자신의 행운에 눈이 멀어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절제란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절제할 수 없는 사람은 균형을 잃고 쓰러지게 마련이다.>

루이제의 판단은 정확했고 과도한 야망을 품은 모든 정복자들의 운명이 그러하듯이 나폴레옹에게도 결정적인 패배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운명은 1812년 러시아 원정 때부터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는데요, 이 원정을 위해 60만명으로 이루어진 사상 최강의 군대를 편성했습니다.

누구도 이 전쟁이 나폴레옹의 손쉬운 승리로 끝날 것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예상은 어긋났습니다.

러시아 군대는 나폴레옹 군대와의 격돌을 회피하면서 점점 내륙 깊숙이 후퇴했습니다.

그해 9월 나폴레옹의 대군이 모스크바에 입성했을 때 도시는 거의 텅 비어 있었고 며칠 후 화재가 발생하면서 도시 전체가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충분한 숙소와 식량 없이는 러시아의 겨울을 넘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러시아의 차르에게 휴전을 제안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퇴각을 명령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고 대군의 비참한 파멸이 시작되었습니다.

매일 수천 명의 병사들이 굶주림과 탈진, 러시아 군대의 공격으로 죽어갔고 불과 5,000명만이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1814년 초, 파리에 입성한 동맹군은 나폴레옹을 퇴위시키고 엘바섬으로 추방했습니다.

일 년 후 그는 파리로 귀환해 새 왕을 축출하고 정권을 되찾는데 성공합니다.

돌아온 나폴레옹은 군대를 재정비하고 재기를 노렸지만 18156월에 워털루에서 프로이센과 영국의 연합군에 의해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는 결국 영국군의 포로가 되어 대서양의 작은 섬 세인트헬레나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182155일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10년간 계속된 나폴레옹 황제의 시대가 막을 내리자 그의 대제국은 마치 카드로 만든 집처럼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정복 전쟁을 벌인 야전 사령관으로서보다는 정부의 수장으로서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웠습니다.

그 대표적인 업적 가운데 하나가 1804년에 제정된 <민법전>인데 나폴레옹 법전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법전을 통해 혁명을 통해 제기된 요구들이 현실화 되었습니다.

그 주요 내용으로는 모든 프랑스인들에게 적용되는 단일한 법, 법 앞에서의 평등, 개인의 자유, 신분제 폐지, 출생보다는 업적에 따른 공직 임용, 영업의 자유와 직업 선택의 자유, 재산권, 종교의 자유, 법률적 혼인 제도의 도입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후 나폴레옹 법전은 유럽과 전 세계 민법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행정 개혁 또한 나폴레옹의 주요 업적에 속하는데요, 프랑스는 98개의 행정 구역으로 분할되었으나 각 구역은 자치권을 갖지 못한 채 파리로부터의 지시에 따라야 했습니다.

학교 제도의 개혁 역시 중앙 집권적으로 추진되었고 전국의 학교 교육은 국가의 통제 아래 단일한 교과 과정과 교과 시간에 따라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독일을 점령한 뒤 이곳에서도 개혁을 단행했는데 예를 들면 교회의 지배 아래 있던 지역이 세속 영주들에게 양도되었습니다.

프랑스 지배에 대한 저항 운동이 일어났는데 나폴레옹의 관심이 전쟁을 위한 돈과 병사를 동원하는데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질수록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특히 독일에서는 나폴레옹과의 투쟁이 민족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독일의 시인과 사상가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문화 민족의 일원임을 자처하고 있었다면 이제 독일인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치적 의미의 민족이 되고자 했습니다.

민족의 고유한 본성을 지키고자 하는 소망은 해방전쟁으로 이어졌고 결국 프랑스의 패권을 깨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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