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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만에 끝내는 세계사

[5분]만에 끝내는 기본 세계사 14편 - 파괴와 살육의 시작(대항해시대)

by KS지식 - 문화 YouTube 2022.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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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만에 끝내는 기본 세계사 14편 - 파괴와 살육의 시작(대항해시대)

르네상스는 학자와 예술가의 시대이기도 했지만 탐험가와 항해자들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중세까지만 해도 항해자들은 대개 알려진 해안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잘못하다가 혹시 세상의 끝에 가서 얼어 죽거나 불에 타 버리거나 폭풍에 휩쓸리거나 바다의 괴물에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불안감은 15세기에도 있었으나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듯한 르네상스 시대의 들뜬 분위기는 항해자들의 사기를 북돋웠습니다.

그들은 탐구욕과 모험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고 물론 새로운 항로와 지역을 개척하는 데 따른 확실한 경제적인 이익도 중요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1453냔 비잔티움 제국을 완전히 무너뜨린 투르크족은 콘스탄티노플의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꾸고 새로운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수도로 정했습니다.

이후 그들은 지중해 전 지역을 장악하고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모든 주요 통상로를 통제하면서 상인들에게서 상당한 액수의 통행세를 징수했습니다.

인도와 중국에서 서양으로 들어오는 귀한 물건들의 가격은 더욱 비싸졌고 사람들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통과하지 않고 동아시아와 거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는데 바다만이 그 유일한 가능성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국에서 들여온 나침반은 이런 대담한 모험을 가능하게 해 줄 중요한 항법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선구적인 생각을 한 사람들이 늘 그렇듯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역시 주변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샀습니다.

그는 몇 년에 걸쳐 포르투갈 왕에게 인도의 보물을 약속하며 원정에 필요한 자금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청원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콜럼버스가 다음으로 발길을 돌린 곳은 스페인이었습니다.

스페인이라고 그의 생각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설득에 성공해 스페인의 여왕에게서 세 척의 범선을 갖추기 위한 자금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149283일 콜럼버스는 120명의 선원을 데리고 스페인을 출발했습니다.

낯선 바다 위에서 항해가 콜럼버스의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길어지자 선원들은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불안은 날로 심해져 갔고, 자연히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조만간 인도 땅에 이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선원들을 독려해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콜럼버스는 인디언 말이라고 기록했는데요 그는 자신이 인도에 속하는 섬에 상륙한 것이라고 믿고 그곳의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 후 10년 동안 콜럼버스는 서쪽 방향으로 세차례 더 항해를 했지만 끝까지 자신이 아시아 지역에 간 것으로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착오를 기념하는 뜻에서 그가 발견한 섬들을 서인도 제도라고 명명했습니다.

이후 다른 사람들도 서쪽을 향한 항해에 나섰는데 그들은 곧 콜럼버스가 인도로 가는 새 항로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대륙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인 항해자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에 따라 이 대륙은 아메리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정복자들은 오로지 엄청난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아메리카로 몰려갔습니다.

특히 금에 대한 탐욕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미덕을 모두 잊어버리고 무자비한 만행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중에서도 500명의 부대를 이끌고 간 스페인의 기사 에르난 코르테스가 저지른 짓은 특히 악질적이었습니다.

인디언들에게 전설적인 아스텍 왕국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은 그는 부하들을 데리고 이 왕국을 찾아 나섰습니다.

인디언들은 방어하려 했지만 스페인의 기병이 나타나거나 대포 한 방만 발사해도 기겁을 하고 달아났습니다.

인디언들은 그때까지 말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대포 소리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겐 막강한 힘을 가진 이방인들이 신으로 보였는데요 151911월 아스텍 왕국의 수도에 도착한 스페인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아스텍인들은 이방인들을 친절하게 대접했지만 스페인인들이 보물을 훔치고 폭력을 동원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라고 강요하자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1522년에 아스텍 왕국은 멸망했고 에르난 코르테스를 총독으로 하는 신스페인 부왕국이 수립되었습니다.

그리고 10년 뒤에 스페인인들은 과거 아스텍인보다 훨씬 더 부유한 민족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안데스산맥 고원 지대에 살고 있던 잉카인들은 실제로 매우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부는 근면과 검소함, 엄격하게 조직화된 생활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모든 재산은 국가에 속했고 국가가 농업과 광업을 위한 계획을 구상하고 수공업을 관리하며 생산물의 분배를 결정했습니다.

 

노인이나 병들고 허약한 사람들도 국가로부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받았습니다.

이 국가를 현대적인 의미에서 사회주의적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잉카인들은 제국의 수호와 확장을 위해 막강한 군대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이 군대의 전투력은 스페인의 침입자들을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침입자들의 우두머리인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간교한 술책을 꾸밉니다.

피사로는 잉카 제국의 통치자를 비무장 우호 회담에 초대하여 그를 인질로 잡은 다음, 잉카인들에게 통치자를 살려내고 싶으면 커다란 방 하나를 금으로 가득 채우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들이 특히 눈독을 들인 것은 금과 은이었는데 이 때문에 인디언들은 광산에서 말할 수 없이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일하고 비참하게 죽어 갔습니다.

유럽인들이 롬겨온 전염병과 질병도 인디언들에게 치명적인 위험이되었습니다.

추정에 따르면 신대륙 발견 이전에 중남미 지역에는 대략 7,500만 명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 숫자가 1570년경에 이르면 800만에서 1,000만 명 정도로 감소됩니다.

그러나 망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농장이나 금광, 은광에서 일할 인디언들이 부족하게 되자 아프리카로 인간 사냥을 나갔습니다.

사로잡힌 아프리카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와 마치 짐승처럼 팔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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