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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만에 끝내는 세계사

[5분]만에 끝내는 기본 세계사 10편 - 교황vs황제 (카노사의굴욕)

by KS지식 - 문화 YouTube 2022.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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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만에 끝내는 기본 세계사 10편 - 교황vs황제 (카노사의굴욕)

실제로 교회 권력과 세속 권력의 관계는 샤를마뉴 시대 이후 점점 더 긴밀해졌습니다.

이제 교회 권력과 세속 권력의 관계를 어떻게 조절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기나긴 대결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카롤링거 왕조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오토가문과 잘리어 가문에서 나왔습니다.

가들은 이 세상의 지배자로서 아주 자연스럽게 수도원장과 주교의 임명권을 행사했습니다.

1039년에서 1056년까지 재위했던 하인리히 3세는 한 술 더 떠서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교황들을 퇴위시키기까지 했는데 이러한 처사는 많은 성직자들을 격분케했습니다.

하인리히 3세가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그의 어린 아들 하인리히 4세가 왕위에 오르자, 성직자들은 이때를 반격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황제의 간섭을 배제하고 일곱 명의 추기경에 의한 교황 선출 제도를 관철시켰고 1075년 새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더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주교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교황이 독점하는것이었는데 하인리히 4세는 주교를 임명할 수 있는 권리인 서임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황제의 지위가 약화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데요 그는 측근들과의 숙의 끝에 교황의 폐위를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교황은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하고 신하들이 황제에게 한 충성 서약을 무효화했는데 이런 전례없는 사태에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황제가 마치 범죄자처럼 취급당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인리히 4세의 파문은 곧 그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스스로 추방당할 위협에 내몰린 많은 제후들이 교황의 편으로 넘어갔고 황제의 힘이 약화된 틈을 타 자기들 권력을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카노사의 성에서 참회복을 입고 교황 앞에 나아가 용서를 구했는데 교황은 참회하는 죄인을 다시 교회의 품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황제 하인리히 4세의 힘겨운, 하지만 현명한 선택은 카노사의 굴욕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책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일로 교황은 황제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 하인리히 4세는 유리한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군했고 그레고리우스에게 대항하는 다른 교황을 내세웠고 이 교황에 의해 베드로 대성당에서 황제로 추대되었습니다.

이미 그 당시 사람들도 이런 방식으로는 주교 서임권 논쟁이 매듭지어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결을 위한 양측의 노력이 시작되기까지는 수십 년의 세월이 더 흘러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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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 더 자세한 내용이 있고 구독 & 좋아요는 더 좋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mZlXwXTyJ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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