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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Life

혈액형과 성격이 과학적으로 정말 관계가 있나요?

by KS지식 - 문화 YouTube 2022.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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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형은 온화하고 반성적이며 진중하고, B형은 조잘거리고 의지가 약하다. 독일에는 A형이 흔하고 식민지인과 집시에게는 B형이 많다.’ ‘공장 노동자 중에 O형과 AB형이 주로 사고를 낸다. A형과 B형은 사고를 치는 경우가 적다.’ 1932년,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에 소개된 혈액형과 성격에 관한 기사 내용이다.

20세기 초에 ABO 혈액형이 알려지면서 우생학자들은 민족 전체의 혈액형을 검사해 통계를 내기 시작했다. 폴란드 생물학자 히르슈펠트는 병사들의 혈액형 중 유럽인에게는 A형이, 비유럽인에게는 B형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 비율이 유럽인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지표라고 주장했다.

일본 심리학자 후루카와 다케지는 이 연구를 접하고 혈액형을 성격과 연관해 A형은 진중하고, B형은 활동적이고, AB형은 모순적이며, O형은 호기심이 많다고 보았다. 그래서 O형과 B형이 많은 도쿄는 활동적 도시였고, A형과 AB형이 많은 교토는 활기가 없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네 가지 혈액형에 맞는 직장 목록이 만들어졌고, 구직자는 이력서에 혈액형을 적어야 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혈액형에 근거한 우생학과 혈액형 성격론이 모두 유행했다. 경성제대 교수인 기라하라는 마치 유럽인처럼 일본인에게는 A형이 많지만, 조선인은 A형이 적다는 통계를 들먹이면서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열등하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혈액형을 인종적 우월성과 연결하는 우생학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지만 역시 사이비 과학인 혈액형 성격설은 일본과 한국에서 살아남았다. 혈액형 성격설을 믿지 않는 호주나 대만 젊은이에게 테스트해 보면, 혈액형 성격이 근거가 없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런데 일본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는 이 둘의 상당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혈액형 성격설을 받아들이면 이에 맞추어 자기 성격을 정의하고 조금씩 바꿔나가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고 불렀고,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이 정신 과학의 ‘루핑(looping) 효과’라고 명명한 현상이다.

 

며칠 전 소개팅에 나간 A씨는 불편했다. 상대방 B씨가 자신에게 혈액형을 물은 뒤, 소개팅 내내 혈액형 얘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A씨는 "요즘 같은 시대에 혈액형을 따지는 사람이 있느냐"며 다음 번 만남을 거절했다.

혈액형을 소재로 한 만화의 캐릭터. 혈액형별 성격을 묘사해 인기를 끌었다.

혈액형별 성격 이야기는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알 법한 얘기다. 이 혈액형별 성격으로 말하자면 A형은 세상 둘도 없는 소심쟁이로, AB형은 바보 아니면 천재, B형은 바람둥이로 만들어버린다. 성격 좋다고 알려진 O형이 화를 내면 "넌 O형이 왜 그래?"라며 핀잔을 받을 수도 있다.

10명 중 6명은 "혈액형별 성격 차이 있다"

혈액형마다 성격이 다르다고 믿는 사람은 아직 꽤나 많다. 최근 한국갤럽이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설문조사(표본오차 ±2.5%포인트)에 따르면, 응답자의 과반을 넘는 58%가 혈액형에 따라 사람들의 성격에 차이가 있다는 답변을 내놨다. 열 명 중 여섯 명꼴이다.

혈액형별 성격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871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혈액형이 무엇인지 물은 결과 49%가 O형을 선택했다. 그 다음은 A형 20%, B형 16%, AB형 6% 순이었다. 2002년, 2012년 조사에서도 마찬가지로 혈액형 성격론을 믿는 사람들의 절반 가량이 O형을 꼽았다.

"그럼 세상 모든 성격은 네 가지 뿐이야?"

혈액형과 성격을 연관지어 생각하는 모습은 미국인이 생각하는 '한국인의 특이한 행동'에 꼽히기도 했다. 미국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에서는 한국인의 특이한 행동 중에 '혈액형으로 성격 파악하기'에 대해 영상으로 묘사했다.

한국 여성이 "걔 혈액형이 뭐야?"라고 묻자 미국 여성은 "내가 걔 혈액형을 왜 알아야 해?"라고 되묻는다. 이에 한국 여성이 "어떻게 혈액형을 모를 수 있어? 혈액형을 알면 그 사람 성격을 알 수 있어"라고 답하자, 미국 여성은 "그럼 세상 모든 성격은 네 가지뿐이야?"라고 묻는다.

다소 극단적으로 묘사되기는 했지만, 혈액형과 성격에 대한 한국인과 미국인의 인식 차이를 보여준다.

일본과 우리나라만 믿는 '혈액형별 성격'

혈액형별 성격의 역사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생학이 유행하던 유럽에서는 주로 백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했다. 1910년대 ABO식 혈액형 지식이 도입되면서,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내과의사 듄게른이 순수 유럽 민족인 게르만족의 피가 A형이고 B형은 아시아 인종에게 많다고 언급했다.

알렉산더는 당시 전염병으로 인식되던 암, 결핵, 매독 등의 불치병은 아시아계 B형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최초로 발표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슈츠와 뵐리슈는 B형 범죄자설까지 주장했다. 유럽인 우월의식과 인종차별 의식에 따른 주장이었다.

당시 독일에 있던 일본 철학 강사 후루카와 다케지는 힐슈펠트의 연구 결과를 본 뒤 주변 사람 319명을 조사해 '혈액에 따른 기질 연구'라는 글을 썼다. 다케지는 "혈액형이 다르면 성격도 다르다"고 주장했다.

다케지의 글을 기초로 1970년대 초 일본 작가 노미 마사히코는 '혈액형 인간학'이라는 책을 펴냈다. 혈액형에 따라 몸의 구성 물질이 다르고, 이것이 체질과 성격을 결정한다는 비(非)과학적 내용이었지만 일본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이 유행이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현재의 혈액형별 성격에 믿음이 굳어진 것이다.

 

과학적 근거 없는데, 왜 휘둘릴까?

혈액형은 혈액 내 물질이 다양한 형태로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뿐이다. 이런 과학적 근거를 무시하고 단지 같은 ABO식 혈액형이라는 이유로 혈액 세포 내에 같은 성격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가졌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최초에 혈액형별 성격 연관성을 이야기한 후루카와 다케지의 주장처럼 혈액형이 성격 구성요소인 유전적인 측면의 기질이라면, 특정 혈액형의 빈도가 높은 국가의 국민성은 특정 혈액형의 성격 특징으로 나타나야 한다.

혈액형별로 성격을 나눈다면, 인종의 100%가 O형으로 보고된 페루 인디언이나 98%가 O형으로 보고된 마야인은 모두 성격과 행동이 비슷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는 A형이 44%, O형이 42%이고 미국은 A형이 40%, O형이 45%이다. 프랑스나 미국에서는 사람이 대부분 A형과 O형인 만큼 혈액형으로 사람 성격을 구분할 여지가 많지 않다. 스위스도 53%가 A형으로 보고됐다.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민성은 주로 A형의 성격·특징·고정관념 특성대로 내성적이고 소심해야만 되지만, 그렇게 조사된 일은 전혀 없다.

 

무서운 '고정관념'이 된 혈액형별 성격

우리나라도 입사지원서에서 혈액형 적는 칸이 없어지는 것부터 인식에 변화가 있기는 하다. 모두 '혈액형별 성격론'이 비과학적이라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면서부터 이뤄진 변화다. 그런데도 조사자의 58%가 아직도 혈액형별 성격을 믿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자들은 그 이유를 '바넘 효과'와 '자기 이행적 예언 효과'에서 찾는다. '바넘 효과'는 일반적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여기는 경향이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일은 적극적으로 하고, 싫어하는 일은 회피하려고 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그렇다"고 답한다. 당연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자기이행적 예언 효과'는 '피그말리온 효과'라고도 하는데, 미래에 관한 개인의 기대가 그 미래에 영향을 주는 경향성을 의미한다. 우리가 기대한 대로 보게 되고, 타인의 기대대로 행동하게 될 수도 있음을 뜻한다.

고정관념은 가장 파괴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남들이 좋은 혈액형이라고 말하면 성격이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혈액형이 좋지 않다거나 주목받은 단점만을 지속해서 듣게 되면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혈액형 때문에 "소심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온 A형이 중요한 순간에는 정말로 '소심한 A형'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가수 요조가 A형이 소심하다는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상대방이 자신의 혈액형을 물으면 A형이 아닌 O형 또는 AB형으로 답했다고 한다. 혈액형 편견에 힘들었던 적 있는 한국인이라면 혈액형을 밝힐 때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일 것이다.

ABO식 혈액형 분류가 성별과 인종, 나이 등을 초월한 새로운 생물학적 분류체계인 것은 맞다. 그러나 실상 300가지가 넘는 혈액형을 네 가지로 분류해 성격을 규정짓는 것은 개인의 환경적·유전적 성격을 모두 무시하는 고정관념일 뿐이다.

사람들은 고정관념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정보를 해석하고 추론하고 평가한다. 고정관념과 편견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대상에 대한 평가나 판단을 하게끔 한다. 검증되지도 않은 이론 때문에 혈액형이라는 틀로 상대방을 쉽게 규정짓거나 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될 일이다.

과학자들은 혈액형에 대해 성격이 아니라 질병에 영향을 미치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혈액형을 결정짓는 유전자와 비슷한 곳에 질병 관련 유전자가 있다는 가설도 힘을 얻고 있다. 이런 연구는 미래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는 A형을 봤을 때 "소심하겠네요"가 아니라, "O형보다 위암에 걸릴 확률이 높겠네요"라고 말할 자신이 있다면 혈액형을 물어도 좋겠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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