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는 2020년 7월 버려지는 폐페트병을 활용해 티셔츠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폐페트병으로 재생 섬유를 만들고 이를 의류로 제작해 시장화한 것은 블랙야크가 처음이었다. 당시 블랙야크는 화학섬유 제조사 티케이케미칼과 업무협약을 맺고 폐페트병을 녹여 섬유로 만들고 이를 활용해 아웃도어 의류를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블랙야크가 그로부터 지난달까지 활용한 페트병(500㎖ 기준)은 6300만개에 달한다.
페트병을 활용해 만든 ‘친환경 의류’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재생 섬유를 활용한 의류가 인기를 끌고 있다. 패션업계는 폐페트병을 활용한 의류를 제작해 판매하면서 친환경 가치를 달성하는 동시에 매출을 확대하면서 ‘일거양득’을 이뤄내고 있다.
실제로 이 결과 폐페트병 가격은 최근 들어 ‘금값’이 됐다. 20일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압축 페트(PET) 가격은 1kg당 472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압축 페트 가격은 1kg당 412원이었는데 올해 들어 14% 넘게 뛰었다. 실제로 페트병을 재활용하는 규모 자체가 크게 늘었다. 지난 2021년 한해 동안 전국에서 재활용한 폐페트병은 26만7991톤에 달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연간 16만톤 가량 재활용하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장이다.
이처럼 재활용하는 페트병이 크게 늘어난 배경에는 패션업계의 기여가 있었다. 2020년 블랙야크가 국내서 처음으로 친환경 패션 ‘플러스틱(PLUSTIC)’을 출시한 뒤로 다른 브랜드들이 잇따라 재생 섬유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 현행 안전 규제에 따라 폐페트병을 식·음료 용기로 재활용하지 못하는데 재생 섬유 만큼은 별다른 규제가 없다. 이 결과 한국은 폐페트병 가운데 절반 이상 의류용 섬유로 재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폐페트병을 다방면에서 활용하는 유럽과 일본의 경우 섬유로 재생하는 비율은 20~30% 수준이다. 블랙야크 관계자는 “친환경 의류는 많이 소비할수록 더욱 많은 페트병을 없애 환경을 더 많이 되살릴 수 있다”라면서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의류를 만들면서 10년생 소나무 270만그루가 1년 동안 흡수하는 양만큼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패션업계는 폐페트병 수거 및 재활용 단계부터 가공·제작·판매하는 과정에까지 모두 적극 나서고 있다. 블랙야크는 서울 강남구 등 지자체는 물론 SK하이닉스, 포스코 등 대기업과도 업무 협약을 맺고 폐페트병을 공급받고 있다. 또한 이마트, 코카콜라, 맥도날드, SK가스 등에는 폐페트병을 활용해 제작한 단체복을 공급하면서 폐페트병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는 최근 들어 폐페트병 재활용율이 떨어지던 가운데 이뤄진 결과로 주목을 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80%를 상회하던 폐페트병 재활용률은 최근 들어 70%대로 하락한 상태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들이 최근 들어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라면서 “패션업계가 폐페트병 재생섬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면 재활용률 또한 빠르게 올라갈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9월 국내 최초로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헤드램프 소재로 쓰이는 합성수지 제품을 상업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SK케미칼은 재활용 페트를 이용해 고품질 재활용 섬유를 개발하고 있고, 현대오일뱅크도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페트병을 분리배출하는 비율은 80% 가량으로 높지만 불순물 등이 많이 섞여 재활용하기 어려웠다”라면서 “그동안 재생섬유는 물론 폐페트병을 해외에서 수입했지만 이처럼 페트병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면 국내서 자급자족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친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호텔가에서도 ‘그린 스테이(green stay)’가 확산하고 있다. 일회용 샴푸·린스 등을 퇴출시키고, 플로깅(쓰레기 줍기) 활동을 포함하는 숙박 패키지 상품도 등장했다.
최근 특급 호텔에서도 일회용 어메니티(편의용품) 대신 다회용, 대용량 어메니티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 롯데호텔
페트병 재활용 나선 호텔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호텔가에는 폐페트병 재활용 바람이 일고 있다. 재활용 가치가 높은 투명 생수병을 따로 수거해 제품으로 만든 뒤, 해당 제품을 활용한 패키지 상품을 출시하는 식이다.
조선호텔앤리조트의 포포인츠바이 쉐라톤 조선은 폐페트병으로 만든 화장품을 포함한 객실 패키지 ‘세이브 더 플래닛’을 오는 6월 30일까지 선보일 예정이다. 서울역과 명동 두 지점에서 시행하며, 객실에 따라 제품 증정 및 체험이 이뤄진다.
이 회사는 지난해 4월부터 환경부가 주관하는 자원순환 프로젝트 ‘세이브 더 플래닛 얼라이언스’ 캠페인에 참여, 호텔에서 사용하는 생수 페트병을 무라벨 페트병으로 바꾸고, 별도 분리해 배출하고 있다. 투명 페트병은 CJ대한통운이 따로 회수해, 친환경 뷰티 브랜드 아로마티카의 화장품 용기로 재활용되고 있다.
객실에서 나오는 투명 페트병 쓰레기를 활용해 제품을 만들고, 이를 포함한 패키지 출시도 활발하다. 사진 조선호텔앤리조트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제주와 롤링힐스 호텔은 폐페트병으로 만든 가방을 제공하는 패키지 상품 ‘체크인 그린 패키지’를 지난 20일 내놓았다.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는 지난해 제주개발공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객실에 무라벨 생수를 배치, 사용한 생수병을 따로 수거해 고품질 재생 섬유로 만들고 있다. 친환경 패션 브랜드 플리츠마마가 이 섬유를 활용해 가방을 만들었다.
올해 말까지 진행되는 체크인 그린 패키지를 이용하는 고객은 여행하며 쓰레기 줍기를 실천할 수 있는 ‘플로깅 키트’도 받을 수 있다. 플로깅은 산책하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으로, 키트(도구 세트) 안에는 생분해 비닐봉지·장갑·집게 등이 들어 있다. 또 누구나 동참할 수 있는 친환경 여행안내서를 제공하고, 고객의 별도 요청이 없으면 객실 정비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플로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키트 제공에 나서기도 한다. 사진 코오롱리조트앤호텔
코오롱리조트앤호텔은 투숙객과 함께 환경보호 활동을 실천할 수 있는 ‘그린 트래블 위드 코오롱’ 캠페인을 실시한다. 코오롱호텔·마우나오션리조트·씨클라우드호텔 등 전국 6개 리조트 및 호텔에서 진행되는 행사로, 호텔에 비건 스킨케어 브랜드의 다회용 샴푸·바디워시·핸드워시 등을 비치하고, 플로깅 키트를 제공하는 등의 프로그램으로 이뤄져 있다.
대용량 어메니티 자리 잡아
일회용 어메니티(편의용품) 대신 대용량 샴푸·바디워시를 비치하는 호텔도 늘고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객실 50개 이상 숙박업체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일회용 어메니티의 사용으로 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자는 취지다.
특히 위생을 강조하는 특급 호텔들도 다회용 어메니티를 도입해 눈길을 끈다. 롯데호텔은 지난 2021년부터 호텔의 일회용 어메니티를 대용량 다회용 디스펜서로 교체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는 시그니엘과 롯데호텔 서울에도 적용했다. 조선호텔앤리조트도 순차적으로 대용량 디스펜서를 도입하는 중이며, 포시즌스호텔도 현재 대용량 제품을 비치한 상태다. 대용량이지만 사용자가 개봉할 수 없도록 특수 제작된 용기를 사용해 이물질 유입 등의 위험을 차단했다는 설명이다.
대용량 어메니티 대신 종이 포장재로 만든 일회용 어메니티, 고체 치약이나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칫솔 등의 친환경 제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사진 워커힐호텔
다만 이 같은 ‘친환경 변신’이 그동안 호텔의 주요 서비스 영역으로 여겨졌던 어메니티 제공, 객실 정비 등을 줄이는 형태라서 서비스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비용이 절감되는 만큼 객실료 인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호텔 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 일회용 어메니티 같은 부분을 아쉬워하는 고객의 목소리도 있지만, 환경보호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면서 동참하겠다는 의견이 더 많다”며 “수거한 폐페트병으로 만든 제품을 제공하는 등 친환경 노력이 고객에게도 장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조현준 효성(65,200원 ▼ 100 -0.15%)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고객 몰입 경영으로 나아가야 생존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객 몰입 경영은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을 넘어 예측하지 못한 미래 요구까지 충족시키는 것이 골자다. 효성그룹은 특히 고객들이 높은 수준의 환경 인식과 책임을 기대하는 데 부응해 친환경 활동·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효성과 효성티앤씨(438,500원 ▼ 3,000 -0.68%), 효성중공업(66,200원 ▲ 300 0.46%)은 지난해 12월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출연해 한국수산자원공단, 거제시와 함께 경남 다대·다포리 해역의 잘피숲 보전 활동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잘피는 대표적인 해양생태계 탄소 흡수원으로 꼽힌다. 해양생태계법에 해양보호생물로도 지정돼 있다. 효성그룹이 출연한 기금은 ▲잘피 분포 현황 및 서식 환경 모니터링 ▲잘피 보식 필요 장소에 이식 ▲바다에 버려진 폐어구 수거 등 해양 환경개선 활동에 쓰일 예정이다.
앞서 효성첨단소재(419,000원 ▼ 5,000 -1.18%)는 전북 전주에 2급 멸종위기 야생식물인 전주물꼬리풀을 식재·보전하는 사업에 참여했고, 효성화학(127,400원 ▼ 1,600 -1.24%)은 충북 청주동물원과 함께 국가보호종인 동물들의 행동풍부화 활동을 진행했다.
효성그룹은 리사이클링 사업을 통한 지속가능 경영도 이어가고 있다. 효성티앤씨는 투명 페트병을 재활용해 친환경 섬유인 ‘리젠’을 만들었다. 서울시, 제주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수거한 페트병을 각각 ‘리젠서울’ ‘리젠제주’ ‘리젠오션’ 등의 섬유로 재활용해 자원 선순환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 이른바 ‘리젠 프로젝트’다. 효성티앤씨는 지난해 서울시를 비롯해 금천·영등포·강남구와 함께 폐페트병 약 900만개를 리젠서울로 재활용하기도 했다.
효성티앤씨는 또 울산공장에서 나일론 리사이클 섬유를 생산할 수 있는 해중합 설비를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연간 3600톤(t)을 생산할 수 있는 해중합 설비는 바다에서 수거한 폐어망을 화학적으로 분해해 나일론 원료인 카프로락탐을 제조한다. 효성 관계자는 “폴리에스터 리사이클 섬유뿐만 아니라 나일론 섬유 시장에서도 친환경 트렌드를 이끌겠다는 조 회장의 주문에 따라 투자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효성티앤씨는 최근 세계 최초로 옥수수에서 추출한 원료를 가공해 만든 바이오 스판덱스 ‘크레오라 바이오베이스드(creora® bio-based)’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효성티앤씨는 스판덱스의 원료를 자연친화적으로 바꾸면 화학적 에너지원의 사용이 감소하고, 탄소세가 줄어드는 만큼 이익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효성그룹은 기업문화도 친환경에 초점을 맞춰 바꿔나가고 있다. 효성티앤씨는 본사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사무실 개인 컵 사용’ 캠페인을 2년째 이어가고 있다. 캠페인에 따라 탕비실 등에 있는 종이컵과 일회용품을 없애고, 임직원들에게 개인 텀블러 구입비를 지급했다.
‘페트병 수거’ 캠페인도 지난해부터 시작했다. 임직원들이 다 쓴 페트병을 모아내면, 친환경 섬유 리젠으로 만든 가방 등을 주는 방식이다. 지난해 본사 사업장에서만 약 9000개의 페트병을 모았고, 올해 울산, 구미, 대구 등 전국 지방 사업장으로 확대해 1만5000개의 페트병을 수거하는 것이 목표다.
출처: 매일경제, 중앙일보, 이데일리,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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