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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문화

명화이해하기(20) 몬드리안 - 추상화

by KS지식 - 문화 YouTube 2022.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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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은 수평과 수직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던 화가다. 그는 직선을 교차해 격자무늬를 만들었다. 격자무늬 안을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으로 채웠다. 직선과 원색만 사용한 작품답게 몬드리안 그림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몬드리안의 인생도 그의 그림처럼 반듯했다. 그는 수직과 수평이 아닌 것들을 삶에서 추방했다. 몬드리안은 초록색을 혐오했는데, 자연을 상징하는 색이어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했다. 명확한 직선의 세계만이 그가 추구하는 이상향이었다.

 


유명한 일화도 있다. 칸딘스키 집에 초대받은 몬드리안은 창밖의 나무가 보기 싫다는 이유로 창을 등지고 앉았다. 선물 받은 꽃의 초록색 잎을 흰색 물감으로 덧칠하기도 했다. 사실상 몬드리안에게는 수평과 수직이 종교였다. 무엇이 이 화가를 독특한 믿음의 세계로 인도했을까.

◆ "절대적인 진리를 찾아내겠다"

몬드리안이 처음부터 격자무늬 그림을 그린 건 아니었다. 자연을 거부한 이 화가의 첫 작품들은 자연이었다. 몬드리안은 1872년 네덜란드 시골에서 태어났다. 엄격한 청교도 가풍 속에서 성장했다. 아마추어 화가였던 아버지와 삼촌의 영향으로 일찍 그림을 배웠다. 몬드리안은 아버지처럼 자연을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풍경화를 그렸다. 1892년 암스테르담 미술학교에 입학한 몬드리안은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그림은 평범한 풍경화, 정물화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 네덜란드 지식인 사이에서 신지학이라는 철학이 유행했다. 신지학의 핵심은 이렇다. 이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진리가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 속에도 불변하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규칙이 내재해 있다. 몬드리안은 신지학에 심취했다. 눈에 보이는 현상들 뒤에 숨겨진 진리를 찾고자 했다. 신지학 이론으로 무장한 몬드리안은 1908년부터 1913년까지 나무를 연작으로 그렸다. 가장 처음에 그린 나무는 누가 봐도 나무 그 자체다. 하지만 그다음 작품부터 몬드리안은 나무의 특성을 하나둘 소거하기 시작했다. 이 연작의 마지막 작품에선 나무 형태를 찾아보기 어렵다. 몬드리안은 버리고, 버리며 직선들이 거미줄처럼 뒤엉킨 이미지만을 남겨 놨다. 나무가 가진 어떤 리듬만을 뽑아낸 것이다.

1911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몬드리안은 피카소 작품을 접했다. 당시 모든 유럽 화가들이 그러했듯 몬드리안에게도 피카소는 충격이었다. 피카소와 같은 입체파 화가들은 세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았다. 그들은 화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조각조각 분해하고 재창조해 캔버스에 그렸다. '본다'라는 개념을 송두리째 바꾼 입체파는 몬드리안을 뒤흔들었다. 몬드리안 역시 세상을 겉모습 그대로 보지 않고 그 안에 숨겨진 질서를 찾아내려던 화가였기 때문이다. 몬드리안은 입체파 화가들이 활동하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 '데 스틸' 예술가들

몬드리안은 선과 면이라는 기본 요소만으로 피사체 본질을 담아내려는 입체파의 실험정신을 존경했다. 파리에 정착한 이후 한동안 입체파 양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입체파도 몬드리안에게는 정거장일 뿐이었다. 그는 입체파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몬드리안은 입체파가 세상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화가의 주관이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변덕스러운 인간 감정 따위는 그가 추구하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었다. 몬드리안의 그림은 서서히 추상화 영역으로 나아간다.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계속 버렸다.

1914년에 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유럽이 초토화됐다. 사람들은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해했다. 몬드리안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잔인한 세상에 치를 떨었다. 그는 감히 무질서를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몬드리안은 자연이 가진 변덕스러운 요소를 몽땅 제거하기로 한다. 그림을 통해서 질서정연한 유토피아를 구축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는다. 그렇게 몬드리안에게는 수직선과 수평선만 남았다. 그는 견고하고 명확한 직선이 세상의 본질이라고 여겼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몬드리안의 추상화는 이때부터 탄생했다.

몬드리안은 자신과 비슷한 신념을 가진 예술가들과 뭉쳤다. 그들은 데 스틸(De Stijl)이라는 예술운동을 주도한다. 데 스틸을 영어로 표현하면 'The Style'이다. 데 스틸에 속한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스타일은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예술을 통해 어떤 이상향에 도달하려는 목표만큼은 똑같았다. 데 스틸 그룹은 자연을 재현하는 방식을 거부했다. 그들은 곧은 선과 원색만을 활용해 아름다움의 본질을 끌어내려 했다.

 

◆ "대각선은 용납할 수 없어"

그림을 통해서 절대적인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몬드리안의 포부는 허황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수직, 수평선으로만 이뤄진 단순한 그림이 어떻게 세상을 흔든단 말인가. 입체파나 초현실주의 장르와 비교했을 때, 데 스틸이 서양 회화에 끼친 영향도 크지 않다.

하지만 건축과 디자인 영역으로 넘어오면 얘기가 다르다. 몬드리안은 자신의 철학을 '신조형주의'라는 이론으로 정리했다. 이 이론에 영감을 얻은 건축가 중에 르코르뷔지에가 있다. 그는 수직과 수평만을 남겨놓고 모든 것을 삭제한 몬드리안처럼 군더더기 없는 실용적인 건축 세계를 창조했다. 그렇게 인간의 역사를 바꿨다. 현대적인 아파트 모델을 가장 먼저 도입한 인물이 르코르뷔지에다. 독일 예술학교 바우하우스도 데 스틸 정신을 계승했다. 바우하우스는 건축과 디자인 분야 전반에 실용성과 미니멀리즘 DNA를 심은 기관이다. 사실상 오늘날 산업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만든 곳이 바우하우스다.

 실제로 데 스틸 출신 예술가들은 바우하우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기능성과 간결함을 중시한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이 스티브 잡스다. 아이폰 디자인이 바우하우스 스타일 영향을 받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몬드리안의 철학은 미술을 넘어 넓은 영역으로 뻗어 나가 뿌리 역할을 했다. 그의 수직, 수평선 그림은 어떤 식으로든 세상의 풍경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몬드리안과 함께 데 스틸을 이끈 화가는 되스부르크다. '순수하고 이상적인 조형 세계를 추구한다'는 의지로 뭉친 둘은 결국 갈등 끝에 헤어졌다. 대각선이 문제였다. 되스부르크는 수직과 수평으로만 이뤄진 데 스틸 그림에 대각선을 추가했다. 사선을 이용해 자연이 가진 역동성을 담아내려 했다. 몬드리안은 강력히 반대했다. 그는 수직과 수평만으로도 세상의 본질을 담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선 따위는 자연의 겉모습을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며 되스부르크에게 맞섰다. 결국 몬드리안은 데 스틸에서 탈퇴하며 독자적인 길을 걷는다.

 

몬드리안의 회화 스타일은 유럽의 인상주의 야수파의 영향을 받았다. 한편 사상적으로는 신지학(Theosophy)의 영향 아래 있었다고 한다. 신지학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신의 지혜’를 뜻한다. 종교적 내용을 주로 경험에 의하지는 않았지만, 이성에 의하여 인식하고 설명하는 신학과는 달리, 신지학은 영감과 직관에 기초한다.

신지학은 물질과 정신을 이원론으로 나누면서 물질을 적대시하고 정신을 지향하는데, 이는 신학적ㆍ형이상학적 국면에 집중하는 세계관인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와, 엄격한 채식주의와 극단적 무소유를 실천하는 인도 자이나교(Jainism)가 결합된 것이다. 따라서 신지학에는 금욕주의의 경향이 있으며, 신지학에서 예술은 본능을 정화하고 선구자 역할을 한다. 물질을 정신의 최대의 적으로 간주하면서 물질적 외형은 곧 파멸되고 새로운 정신의 시대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 학문이다.


Gray Tree(1911)
몬드리안도 물질적 세계가 무너진 뒤 도래할 정신적 세계 그리고 새로운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는 신지학의 영향을 받아 물질세계는 하등의 가치도 없으며 물질은 정신의 본질 파악에 방해물이 될 뿐이라고 보았다. 신지학의 영향으로 몬드리안은 ‘우주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은 하나의 원천에서 비롯되며 정신과 물질은 불가분하게 통합되어 있다’고 믿었다.

신지학의 영향으로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 와 ‘-‘, 수평과 수직이 만나서 영구적 균형을 얻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정신의 적이며 가변적이고 표피적인 물질이 아니라, 본질적이고 불변적인 법칙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 와 ‘-‘ 기호는 자연 모든 것에 내재된 이원적 법칙을 의미한다. 몬드리안에 따르면 예술창조는 정신적 계시를 담는 것이며 예술은 사회를 변혁시키는 선구자이다. 회화의 외면적 구조는 자연을 이탈하였지만 회화에 자연의 법칙을 담는 것이다.

현대 신지학은 상당히 독특하다고 한다. 현대 신지학은 여러 다양한 종교들을 통합하여 더욱더 보편적인 신적 지혜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자연과학의 최신 연구 성과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1894년 뢴트겐의 X선 촬영, 1896년 안톤 헨리 베크렐에 의한 원자핵에서 나오는 자연방사선의 촬영 등 물질과 에너지의 변화 관계에 대한 과학의 발견을 신지학의 세계관 내로 흡수하였다. 뇌의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오늘날에도 생각의 영역은 여전히 미스터리이다.

출처 : Arts & Culture,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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